메이저리그에서 세이브 기록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해는 1969년이다. 1958년 시카고 트리뷴 기자 제롬 홀츠먼이 마무리 투수를 평가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세이브를 고안했고, 이 기록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메이저리그 초창기만 하더라도 선발투수의 완투가 상식이었다. 불펜투수의 개념 자체가 없었다. 불펜투수를 평가하는 방법은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현대 야구는 분업화의 야구다. 선발투수가 9이닝을 매번 완투하는 과거와는 달리 선발투수가 6~7이닝을 던져주면 감독의 구상에 따라 적게는 2명 많으면 4명 이상의 불펜투수가 나서 경기를 끝낸다. 그리고 특정 상황에서 가장 마지막에 던진 불펜투수에게는 세이브, 경기 중간에 내려간 불펜투수에게는 홀드가 주어진다(현재까지 홀드는 메이저리그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WAR(승리 기여도), WPA(승리 기대 확률) 등의 세이버메트릭스 기록까지 불펜투수를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분업화 초창기만 하더라도 팀 내 최고의 투수가 마무리투수로서 선발투수로부터 바로 자리를 이어받아 경기를 끝냈다. 하지만 지금은 이닝의 마지막에 나서 경기를 깔끔하게 끝내는 임무만을 갖고 있다. 때문에 분명 불펜투수의 가치는 올라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에 대한 명확한 보상은 주어지지 않고 있다. 불펜투수의 연봉은 전 포지션 가운데 가장 적으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불펜투수도 단 5명에 불과하다.(호이트 윌헬름, 롤리 핑거스, 구스 고시지, 브루스 수터, 데니스 에커슬리)
그럼에도 마무리 투수에게는 2가지의 능력이 요구된다. 먼저,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실력이다. 무엇보다도 뛰어난 구위가 필요하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100마일의 시대다. 시속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00마일 강속구는 적은 이닝을 전력을 다해 던지는 불펜투수에게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올시즌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선발투수가 시속 91.8마일, 불펜투수는 92.8마일이다.
뛰어난 구위는 삼진을 잡아낼 수 있는 확률을 높여준다. 마무리투수가 점수를 내주지 않기 위해서는 타자의 출루를 막아야 한다. 투수가 타자의 출루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투수 자신이 끝내는 것, 바로 삼진이다. 80이닝 이상 소화한 선발투수 가운데 9이닝당 삼진이 10개가 넘는 투수는 11명에 불과하다. 반면, 30이닝 이상 소화한 불펜투수 가운데 9이닝당 삼진이 10개가 넘는 투수는 무려 42명에 달한다.
두번째는 실력으로 측정할 수 없는 정신적 측면이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9회에 등판하는 마무리 투수에게 다음이란 없다. 그의 뒤를 받쳐주는 투수는 더 이상 없다는 얘기다. 자신이 오로지 끝내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 물론 마무리 투수가 모든 경기를 끝내는 경우는 없다. 설령 9회말 2아웃에서 역전 끝내기 홈런을 맞았더라도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경기에 나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이 2가지 측면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롱런하는 마무리 투수를 찾아보기 어렵다. 시간을 4년 전으로 돌려 2012시즌에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선수 가운데 올시즌에도 마무리 투수로 변함없이 뛰는 선수는 7명(페르난도 로드니, 크레익 킴브럴, 조너선 파펠본, 아롤디스 채프먼, 산티아고 카시야, 캔리 잰슨, 휴스턴 스트리트) 뿐이다. 이 가운데 마무리에서 '짤린' 경험이 있는 로드니, 카시야와 2013시즌 브랜든 리그로부터 마무리 자리를 뺏겼던 잰슨을 제외하면 4명으로 줄어든다.
올시즌에도 마무리 투수들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30개 구단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9개 팀이 마무리 투수들의 부상 또는 부진으로 교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미네소타 마무리 투수 글렌 퍼킨스는 개막하자마자 팀이 연패를 빠지는 바람에 등판 기회를 거의 잡지 못하다가 2경기만에 부상으로 아웃되고 말았다. 개막전까지도 마무리 투수를 결정하지 못한 필라델피아는 정규시즌에서 쇼케이스를 가진 끝에 진마 고메즈라는 좋은 마무리투수를 발굴해냈다. 모처럼 좋은 성적으로 가을야구를 꿈꾸는 마이애미는 샌디에이고에서 부활에 성공한 로드니를 영입하며 강력한 필승조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셋업맨으로 시즌을 시작한 오승환은 주전 마무리 로젠탈의 부진 속에 3개월 만에 마무리 투수로서 기회를 잡는 데 성공했다. 세이브 상황이 아닌 첫 2경기에서는 데뷔 첫 만루기회를 허용하고 실점을 하는 그답지 않은 투구였다. 그러나 일요일 밀워키 전에서 첫 세이브 상황에 등판해 삼진 2개를 동반한 퍼펙트 피칭으로 메이저리그 첫 세이브를 따냈다.
오승환은 2005년 KBO리그 데뷔 이후 12년째 ‘끝판왕’의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부침을 겪은 적은 있었으나 몰락은 없었다. 한미일 통산 358세이브. 두 자릿수 세이브를 기록한 시즌만 10번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10시즌 이상 두 자릿수 세이브를 기록한 선수는 단 27명. 이제 세인트루이스에서 통산 11번째 10세이브에 도전한다. 돌부처라는 별명이 실로 어울리는 이유다.
비즈볼프로젝트(반승주)
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