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9일 대전 삼성-한화전. 삼성 박해민은 연장 12회초 1사에서 2루 도루를 시도했다. 세이프. 베이스를 터치한 왼손은 특이한 장갑을 끼고 있었다. 파란색 벙어리 장갑이다. 박해민은 "부상 방지 차원이다"고 말했다.
삼성 선수들이 벙어리 장갑 모양의 주루 장갑을 착용하기 시작한 때는 사직구장에서 롯데와 경기른 치른 6월 29일이었다.
일반적인 주루 장갑과 모양부터 크게 다르다. 손가락 구분이 없어 다섯 손가락이 한데 모아진다. 원래 제품에는 손바닥 위아래로 플라스틱 패널이 있었다. 김평호 주루 코치는 베이스 터치 도중 패널이 부상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 보고 제거했다. 장갑 색깔은 팀 컬러에 맞게 파란색이다.
주루 장갑을 채택한 이유는 올 시즌 유독 부상 선수가 많아서다. 선수 보호 차원의 조치다. 배영섭은 6월 28일 롯데전에서 6회 볼넷을 얻어 출루한 뒤 견제사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왼손 중지에 미세 골절상을 입었다. 류중일 감독은 "베이스를 터치하려다 손가락이 꺾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삼성은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는 주루장갑을 주문했다. 김용성 1군 매니저가 대구삼성라이온즈 파크 그라운드를 관리하는 이태건 비컨설츠 대표에게 요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벙어리 장갑 3세트를 건네 받았다. 1세트 가격은 10만원대 초반이다. 김 매니저는 "박해민과 배영섭이 주루 과정에서 손가락을 다친 적 있다. 올해 우리 선수들이 너무 다친다. 어이없는 부상을 막기 위해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팀은 빠른 선수들(박해민, 구자욱, 김상수, 배영섭 등)이 주축 전력이다. 다쳐선 안 된다. 이 장갑으로 부상을 미연에 방지할 수만 있다면…"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선 이미 익숙한 장갑이다. 피츠버그 강정호도 주자로 출루하면 벙어리 모양 장갑을 끼곤 한다. 메이저리그 출신 짐 아두치도 롯데에서 뛸 때 같은 모양의 장갑을 사용했다. 일반 주루 장갑보다 두툼해 손가락이 꺾이는 등 부상을 막아준다. 김 매니저는 "손가락 부분이 도톰하다"고 귀띔했다.
삼성에선 주력이 좋은 선수들이 주로 사용한다. 박해민은 벙어리 장갑을 뒷주머니에 끼운 채 타석에 들어선다. 또 김평호 주루 코치가 미리 준비해 출루한 선수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새 장갑을 가장 반기는 선수는 박해민이다. 지난 2014년 넥센과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도루를 시도하다 왼손 약지를 다쳤다. 시리즈 남은 경기는 김평호 코치가 마트에서 구입해 온 벙어리 장갑을 끼고 출장했다. 시리즈 뒤 박해민은 구단에 장갑 구매를 요청했다. 박해민은 "베이스를 터치할 때 전보다 훨씬 부담이 덜하다. 마음 편하게 과감한 슬라이딩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꼭 발이 빠른 선수만 이 장갑을 끼는 건 아니다. 11시즌 통산 도루가 23개 뿐인 좌익수 최형우도 경기 중 새 주루 장갑을 착용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