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전설 김병지(46)가 35년 선수 인생을 마치면서 진심을 담아 꺼낸 말이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누구나 아쉬움과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김병지 축구 인생에는 '행복'뿐이다. 안 좋은 모든 기억을 덮을 정도로 기쁜 순간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최선을 다해 뛰었고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상처 날 겨를이 없었다.
김병지는 19일 개인 SNS를 통해 "선수로서 보낸 35년을 추억으로 저장하겠다. 나는 진정 행복한 선수였다"며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1992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한 뒤 포항 스틸러스, FC 서울, 경남 FC, 전남 드래곤즈를 거쳐 지난해까지 24시즌 동안 K리그 개인 통산 최다인 706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45년5개월15일로 K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 역시 품고 있다. 그는 K리그 전설 그 자체였다.
'글'로 은퇴를 선언한 다음 날인 20일 김병지의 '목소리'로 은퇴 심경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은퇴를 발표한 뒤 전화를 너무 많이 받았다. 허리 수술을 했던 2008년부터 마음속으로 은퇴를 생각해 왔다"며 "당장은 따로 은퇴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앞으로 차근차근 가다 보면 여러 기회가 있지 않을까"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축구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없다"고 바로 답했다. 이어 "후회되는 일은 없다. 좋은 일만 있었다.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너무 커 아쉬운 장면은 생각나지 않는다"며 "나는 정말 행복한 선수였다. 너무나 큰 사랑을 받으면서 축구를 했다. 이 행복이 후회와 아쉬움을 다 묻어 버린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가장 기뻤던 일을 물었다. 많은 기쁨 중 2가지를 꼽았다. 그는 "1998년 헤딩골을 넣었을 때 정말 좋았다. 그리고 1996년 우승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과거를 더듬었다.
1998년 10월 24일 울산과 포항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1-1이던 후반 추가 시간 골키퍼 김병지가 헤딩골을 작렬시켰다. K리그 최초의 골키퍼 필드골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1996년 K리그 우승팀은 울산이었다. 김병지는 프로 데뷔 뒤 첫 우승컵을 품었다. 동시에 울산의 창단 첫 우승이었다. 그는 첫 우승의 감격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김병지는 철저한 몸 관리로 정평이 나 있다.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프로 데뷔 시절 몸무게인 78.5kg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제 현역에서 은퇴했으니 조금은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김병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현역에서 은퇴를 해도 몸 관리는 해야 한다. 물론 선수 때처럼 독하게 하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인 관리는 할 것"이라며 "선수 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체력은 필요하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병지의 K리그 사랑은 대단하다.
SNS에서 은퇴를 발표했을 때도 마지막에 "내 젊음이 머물었던 녹색 그라운드! 내 청춘이 물든 곳! 사랑한다, K리그! 보다 더 발전해 보자!"라고 남길 정도다.
그의 목소리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K리그를 많이 사랑해 달라.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경기장에 직접 와서 선수들을 응원해 주면 너무나 감사하겠다"며 "실제로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팬 응원이 많으면 더 큰 힘을 낸다. 경기력도 상승한다"고 부탁했다.
K리그 팬들을 향한 애정도 전했다. 그는 "더 이상 녹색 그라운드에서 선수로 뛰지는 못한다. 하지만 (축구와 관련된) 또 다른 그라운드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팬들과 나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다.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아직 정확히 결정된 것은 없다.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며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정해야 한다. 은퇴를 선언해 많은 일들이 들어오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을 할 생각이다"고 답했다.
이어 "축구 지도자를 할 수도 있고 축구와 관련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고 싶다"며 축구계와 영원한 이별은 없다고 했다.
한편 오는 9월 18일 울산문수구장에서 열리는 울산과 포항의 '동해안 더비'에서 김병지의 은퇴식이 열린다.
김병지의 측근은 "울산 구단에서 김병지 은퇴식을 열어주겠다고 먼저 제의를 했다. 윤정환 감독과 코칭스태프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며 "감사한 일이다. 전설 김병지가 가장 오래 몸담았던 울산에서 은퇴식을 할 수 있어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