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의 진짜 주인공은 지안카를로 스탠튼(27·마이애미)이었다. 스탠튼은 올스타전 메인 경기에는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 전 열린 홈런 더비에서 타구 61개를 담장 밖으로 날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홈런 더비 규칙이 바뀌긴 했지만, 61개는 2005년 바비 아브레우의 41개를 넘는 신기록이다.
특별 행사인 홈런 더비에서만 숫자가 늘어난 게 아니다. 올해 메이저리그의 홈런 생산 속도는 사상 최고인 2000년에 이어 역대 2위 수준으로 올라섰다. 9이닝 경기에서 나오는 홈런 숫자는 2014년 0.86개, 2015년 1.01개, 2016년 1.16개로 3년 연속 급증세다. 1.10개를 넘어선 건 2006년(1.11개)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홈런이 늘어나니 득점도 늘어났다.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가 군림했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스테로이드 시대’에는 경기당 득점이 5점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4.80점, 2009년 4.61점으로 떨어지더니 지난해는 4.24점이었다. 올해는 4.51점으로 올라섰다. 아직 '타고투저'로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투고타저 해소 실마리가 보인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사무국은 저득점 환경이 야구 인기를 떨어뜨린다고 걱정해왔다. 그러나 급증한 홈런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6월 주간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톰 버두치는 이런 의심을 정리한 기사를 냈다. 과거 득점이 크게 증가했을 때는 항상 눈에 띄는 이유가 있었는데, 올해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인구의 반발력에 손을 댄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다.
과거와는 달리 득점이 늘어날 뚜렷한 잘 보이지 않는다. 스트라이크 존 넓이는 바뀌지 않았다. 마운드 높이에 손을 댄 것도 아니다. ‘공식적으로’ 공인구 성분을 바꾼 적도 없다. 그렇다면 ‘비공식적으로’ 공인구 반발력을 올리지 않았는가, 의심할 수도 있다.
사실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인구 반발계수 측정이다. 그러나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어떠한 검증 계획도 없음을 밝혔다. 대신 "반발력을 손댄 사실이 없다"는 말만 남겼다.
그렇다면 간접적인 방법을 쓸 수 있다. 타격 결과와 타구의 질을 살펴보는 것이다. 공인구 반발력이 늘어났다면 타구의 속도와 비거리도 향상됐을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정보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지난해부터 스탯캐스트(Statcast) 시스템이 측정한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
<표> 2015년과 2016년의 타구 정보 비교 (자료 출처: 베이스볼 서번트)
결과적으로, 음모론은 음모론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스탯캐스트는 지난해 11만2천여 개, 올해 전반기 6만1천여 개 타구의 속도와 비거리를 측정했다. 작년과 올해 타구의 질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타구 평균 속도는 지난해 시속 142.4km, 올해는 143.6km였다. 평균 비거리는 63.4m에서 65.8m로 변했고, 평균 발사각도는 각각 10.5도, 11.3도였다.
플라이볼과 라인드라이브 타구로 범위를 좁히면 더 의미가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라인드라이브는 발사각도 10~25도, 플라이볼은 25~50도 사이 타구로 분류된다. 땅볼과 팝업(발사각도 50도 이상)은 반발력 추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플라이볼 평균 속도는 올해 시속 1.4km 증가했고, 라인드라이브는 시속 0.5km 늘어났다. 평균 비거리는 각각 1.9m 증가, 0.8m 감소였다. 즉, 거의 변하지 않았다. 공인구 반발력이 정말 올라갔다면, 같은 각도의 타구는 더 멀리, 더 빠르게 날아갔어야 한다.
홈런 타구만 추려도 결과는 비슷했다. 크게 포물선을 그리는 홈런의 속도는 작년보다 시속 0.6km, 평균 비거리는 1.8m 늘어났다. 라인드라이브 홈런은 속도가 시속 0.8km 늘어났지만, 비거리는 121.3m에서 120.7m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메이저리그 홈런이 전년 대비 15% 가량 늘어난 건 이 정도 변화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음모론을 반박할 근거는 하나 더 있다. 홈런을 제외한 안타 개수는 올해 오히려 줄어들었다. 공인구 반발력이 올라서 타자들이 친 공이 대포알 같이 날아갔다면, 안타 개수도 늘어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메이저리그에서 득점과 홈런은 늘어났을까. 득점은 홈런의 증가 자체로 설명할 수 있다. 홈런은 최소 1득점을 보장하는 공격 방법이다. 남은 홈런의 증가 이유는 타자들의 접근 방식이 달라진 데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선 최근 수 년 동안 수비시프트가 크게 늘어났다. 안타가 될 타구가 아웃이 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여기에 투수들의 구속은 점점 빨라지면서 탈삼진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서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삼진을 감수하더라도 홈런을 노리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어차피 짧은 스윙으로 안타를 만들어낼 확률은 전보다 떨어져 있다. 삼진이 전체적으로 늘었으니, 삼진의 '기회비용'도 줄어든 셈이다. 더 강한 스윙으로 '한 방'을 노리는 게 더 '경제적'이다. 버두치의 기사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하는 현직 타격 코치의 말이 나온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현역 타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다. 하지만 올해 타자들의 헛스윙 비율은 2002년 측정이 시작된 뒤로 최고치를 찍고 있다. 삼진 비율은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 수준이다. 삼진은 이제 타자의 세금처럼 당연한 것이 됐다.
야구는 늘 똑같아 보이지만, 투수와 타자의 전략에 따라 늘 변해왔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생기고, 기울어진 저울은 평형상태에 가까워지기를 반복해왔다. 투수들이 새로운 구종으로 리그 평균자책점을 끌어내리면 타자들은 공략법을 찾아내 다시 끌어올렸다. 타자들이 낮은 코스 공을 집중적으로 노리면, 투수들은 높은 코스로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야구는 늘 그래왔다. '삼진을 감수하고 홈런을 노리는 전략'이 실제 존재한다면, 리그 평균 득점 상승이라는 효과를 실현한 셈이다. 커미셔너사무국이 공인구 반발력에 손을 댔다는 음모론보다는, 공갈포가 늘어나서 홈런이 늘어났다는 가설이 논리적으로 더 정교해 보인다.
박기태(비즈볼프로젝트)
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