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친일파로 명성을 떨친 염석진이 세월을 뛰어넘어 조국을 지키는 비밀요원 장학수로 돌아왔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천의 얼굴, 팔색조, 변신의 귀재라 불리는 이정재의 선택은 또 옳았다.
이정재를 중심으로 두고 본다면 영화 '인천상륙작전'(이재한 감독)에 대한 평가는 딱 둘로 나뉜다. '도둑들'부터 '관상', '암살'에 이르기까지 충무로 상위 1% 흥행보증수표 이정재가 선택한 작품이기 때문에 믿고 본다는 것과, 그런 이정재가 왜 '인천상륙작전'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
"염석진만 싫어할 줄 알았지 제가 같이 욕 먹을 줄은 몰랐잖아요. 하하" 이정재의 이유는 명확했다. 극악무도한 친일파 염석진의 그림자를 조금이라도 빨리 떼어내고 싶었고, 애국, 애족을 강조한 작품이라도 제 손에 들어온 '한국형 첩보영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진정성이 보였기 때문일까.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이정재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한 마음 한 뜻으로 극찬이 쏟아지고 있다. 더 이상 최선을 다 할 수 없다 생각될 정도로 열연을 펼친 이정재의 노고가 퇴색되지 않길, '인천상륙작전' 역시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하길 모두가 바라는 이유다.
※인터뷰③에서 이어집니다.
-이범수와는 '태양은 없다', '오, 브라더스'에 이어 무려 세 번째 만남이다. "작품에서 여러번 호흡을 맞추는 배우는 전지현 이후 처음이다.(웃음) 인연이라 생각한다. '태양은 없다' 시절 형을 처음 봤을 때 '기괴하게 생긴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캐릭터에 맞게 알아서 비주얼을 만들어 온 것이더라. 그 만큼 개성이 강하고 연기에 대한 열정도 뜨거운 배우다. 한결같다."
-진세연과의 미묘한 러브라인도 눈길을 끌더라. "모르는 배우였다. 내 감정을 방해햐는 경우는 있었는데 신인 배우가 내 감정을 더 끌어 올려 주더라. 현장에서 진세연 씨에게 좋은 배우 같다. 연기를 정말 잘 한다. 좋은 배역 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해 줬다.
-절친 정우성과 회사 공동 운영이라는 새 도전을 시작했다. "편하다. 회사를 얼만큼 키우겠다는 목표가 아니니까 특별한 부담감도 없고, 소속 배우들이 많으면 책임감이 뒤따를텐데 지금은 아니다. 이제 막 시작했으니까 올해는 구상만 하면서 지낼 생각이다. 좋은 배우들과 신인 연기자들과 함께 하게 된다면 좋겠지만 급하지 않게 천천히 가려고 한다."
-오랜시간 동료 배우이자 절친으로 지냈는데 사업 파트너로는 어떤가. "어떤 판단을 하는데 있어서 뭐가 옳고 그른 것인지는 보편성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우리 두 사람 뿐만 아니라 '이건 옳은거야. 아닌거야'를 결정지어야 할 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하려 한다. 큰 틀에 있어서는 전혀 이견이 없을 수는 없지만 우린 오래 전부터 상대방의 말을 더 들어주려고 했다. 상대의 결정을 서로 따르려다 보니까 좋으면 좋았지 어렵거나 힘든 것은 없다."
-정우성과는 아직도 존대말을 쓰고 조조영화를 즐겨보나. "이젠 말을 놓을 수 없지 않을까. 영원히 말을 못 놓을 것 같다.(웃음) 최근에는 우성 씨가 바빠 자주 못 만났는데 조조영화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즐겨 본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없는 시간대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스윗박스에서 영화를 본 적도 있다. 뭐 어떤가. 편하고 좋으면 됐지."
-어느덧 40대 중반, 중견 배우가 됐다. "이젠 개인 이정재와 연기자 이정재를 별개로 구분짓기 힘들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개인 이정재는 대체 어디있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했고 그래서 모든 것들이 아주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같다는 것을 어느 정도 받아 들여서인지 예전보다는 많이 여유로워졌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천만이 넘어야 본전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흥행 예측은 어떤가. "그 정도는 아니다. 천만 영화가 이전보다 많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을 수 있는 숫자는 아니다. 아직 천만은 생각도 안 한다. 지금 마음으로는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