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악역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적군'이 됐다. 맛깔스러운 북한 사투리에 일부러 7kg이나 체중을 늘려 완성한 비주얼은 이번에도 캐릭터를 씹어 삼킨 이범수(47)의 열정과 열의를 가늠케 한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이재한 감독) 개봉 후 관객들이 가장 많이 쏟아낸 호평은 바로 배우들의 열연이다. 그 중심엔 이범수가 있다. 이번 영화에서 북한군 사령관 림계진으로 분한 이범수는 죽여도 죽지 않는 징글징글한 악(惡)의 끝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다.
림계진 캐릭터를 놓치고 싶지 않아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은 채 손에 꼭 쥐고 있었다는 이범수. 그는 "누구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을 작품이다"며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모험가, 그리고 세 번이나 거절한 KBS 2TV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아이들을 위해 출연한 아빠 이범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여러 번의 고사 끝에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을 결정지었다.
"내가 그 만큼 성장한 것 같고 인연의 소중함도 있는 것 같다. '슈퍼맨'은 코너가 생길 때부터 러브콜이 들어왔다. 근데 그 때는 그냥 ‘에이’ 였다. '왜 그래~'라고 말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예 할 생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고사했다. 내 개인적인 사생활과 아이들의 모습을 대중에게 선보인다는데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없었다"며 "하지만 그 뒤로도 집사람 라인, 소속사, 나 개인을 통해 잊을만 하면 한 번씩 꾸준히 연락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출연한 이유는?
"어느 날 휴대폰을 수리하기 위해 대리점에 갔는데 저장돼 있는 사진을 백업하는 과정에서 우리 아기들의 더 어렸을 때 사진을 보게 됐다. 소을이 두 살 때 사진이 있었다. 3년 전 사진이었다. 오랜만에 보니까 '아, 우리 소을이가 이럴 때가 있었지?' 싶더라. '이랬던 소을이가 벌써 5살, 6살이 됐구나' 생각하니까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다을이가 이제 두 살인데 '이대로라면 어린 시절을 아빠와 추억도 만들지 못하고 또 평범하게 돌아가겠네'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었던 것인가.
"복합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슈퍼맨' 측에서 또 섭외 전화가 왔다고 하더라. '출연 안 해도 좋으니까 식사라도 한 번 하자'고 했다길래 헛웃음이 나오더라. '그래 알았다' 하고 결국 만나게 됐고 PD님의 진정성에 마음이 움직였다. 몇 년이 걸렸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내 딴에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 예전에는 꺼려졌던 것들이 지금은 괜찮을 때가 있지 않나. 배우도 민낯이 있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있다, 똑같은 사람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주저하지 않게 됐다."
-상상과 현실은 분명 다를 수 있다. 후회하지는 않나.
"아니. 아이들이 좋아해서 좋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느끼고 있다. 2~3주 마다 이벤트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 솔직히 힘들다. 계절에 한 두번은 가능하지만 이렇게 자주는 못한다. 처음엔 '아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방송 출연을 해야 돼?'라고 생각했다. 근데 방송 출연을 해야만 되더라.(웃음) 아이들이 촬영 날만 되면 '아빠 내일은 어디 가는 거야? 시골 농장 가서 뭐하는 거야? 오늘 미리 가면 안돼?'라고 한다. 물론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지만 기분은 좋다. 여전히 엄마를 더 많이 따르지만 아빠도 자주 찾는다. 행복함을 느낀다."
-대학 교단에 서고 있기도 하다.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데.
"러브콜을 받았다. 주제 넘지만 연영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처음 제안을 받아 들였을 때 마음가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가 과거 연영과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보니 학교에서 배운 것 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더라. 실질적인 어려움을 접하면서 일정 부분 교육 과정의 불필요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연기적인 경험과 현장 경험을 토대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내가 학창시절 느끼지 못했고 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소속사를 직접 운영하는 이유도 비슷한가.
"배우 입장에서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어떤 곳일까'라는 원초적 궁금증이 생겼다. 가요계에는 SM, YG, JYP라는 대표 기획사들이 있지 않나. 신인 발굴 육성 프로젝트를 통해 교육하고 투자해서 멋진 상품으로 내놓지 않냐. 선 순환이 된다. 물론 한 해, 두 해 노력해서 된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당장이라도 이수만 양현석 박진영 씨 찾아가서 노하우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꼭 연락할 것이다."
-회사 대표이자 선배로서 목표가 있다면.
"신인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은데 선보여야 할 곳은 없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것이 마음 만으로는 안 된다. 자본이 되고 의지가 있는 곳에서 해야 한다. 연말부터 우리 회사는 센트리올 엔터테인먼트로 공식 명칭이 바뀐다. 배우 기획사로 당당히 자리하고 싶다. 따지고 보면 직접 연기를 가르치는 곳이 없다. 대표는 연기에 대해 잘 모르고 영업만 하며 외부 선생님에게 아이들 교육을 맡긴다. 난 직접 연기를 가르치는 대표로서 책임자 역할을 해내고 싶다. 힘들겠지만 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