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을 떠올렸을 때 관객마다 기억하는 명장면은 제각각 다를 것이다. 러닝타임 118분 동안 1초의 지루함 없이 관객들을 좀비의 세계로 끌어 들이는 '부산행'은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매 장면마다 남다른 의미를 부여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비중은 명장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지는 않는다. 어떤 관객은 쉽게 기억하기 힘들지만 자신에게는 인상 깊었던 좀비를 콕 찍기도 하고, 또 어떤 관객은 김수안의 노래에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할머니 좀비가 마지막까지 잔상에 남았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이에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1000만 관객이 한 번쯤은 언급했던, 여러 번 회자된 명장면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봤다.
▶'첫 좀비' 심은경 등장 특별한 설명 없이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하는 첫 좀비 심은경의 등장은 '부산행'의 히든카드로 관객들의 몰입도를 끌어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좀비가 되고 마는 모습은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심은경을 통해 '부산행'의 문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개봉 초반 영화를 접한 관객들은 첫 좀비의 정체가 심은경이라는 것을 끝까지 모른 채 영화를 관람, 심은경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극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혹여 유명 배우의 얼굴이 등장해 관객들의 시선을 분산시킬까 연상호 감독은 심은경의 얼굴이 철저히 가려지길 바랐고, 심은경 역시 이에 적극 동참하면서 카메오 계의 한 획을 그었다.
▶좀비떼 출몰 '압권' 한 명 한 명 좀비가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열차 안 승객들의 공포만큼 관객들의 공포도 증폭된다. 결국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난 좀비들이 서로를 짓밟으면서 살아있는 사람에게 달려드는 장면은 압권 중 압권. 기차 창문에서 쏟아져 내리고, 안전할 줄로만 알았던 대전역에서 맞닥들이 굉장한 수의 좀비 떼에 육성으로 탄식을 내뱉는 관객도 수두룩 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모두 좀비로 변해 뒤쫓는 진풍경과, 마지막 부산행 기차에 개떼처럼 달려들며 피라미드 구조물 처럼 산처럼 쌓인 채 공격하는 좀비탑은 할리우드 영화 못지 않은 완벽함을 자랑했다.
▶'믿고보는 마블리' 사이다 마동석 개봉 전부터 스틸 한 장으로 예비 관객들을 뒤집어 놓은 장본인. "사람이 좀비를 퇴치하는 영화인가요?"라는 질문도 마동석 앞에서는 더 이상 우스갯 소리가 아니다. 자신의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공유 최우식과 의기투합, 기꺼이 선봉에 선 마동석이다. 야무지게 장비를 챙긴 두 남자들과 달리 일단 자신의 주먹을 단단하게 테이핑 한 채 맨 주먹으로 좀비 떼가 가득한 다음 칸을 바라보는 마동석은 심장이 쫄깃해질 정도로 긴장했던 관객들에게 찰나의 안정감을 선사한다. 강강약약. 좀비들에게 누구보다 두려운 존재가 되는 마동석은 내 편이라 다행인 캐릭터로 맹활약을 펼친다.
▶좀비보다 끈질긴 김의성 '짜증유발' 징글징글하다. 짜증과 분노는 모두 한 사람을 향한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좀비는 그나마 귀여운 구석이라도 있다. 제 의지대로 저만 살겠다고 온갖 악행을 마다하지 않는 김의성은 주변에 꼭 한 명은 있는 인간 군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내 화를 자초한다. 연상호 감독의 팬으로 어떤 캐릭터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출연부터 결정했다는 김의성은 '부산행' 개봉 전 "나중에 시나리오를 보고 '아차' 싶었다. 악역 중 가장 비호감이다. 영화가 잘 되면 곤란하다"는 뜻을 내비쳐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김의성의 바람과 달리 '부산행'은 무려 1000만 돌파에 성공, 김의성은 기분 좋은(?) 비호감으로 남게 됐다.
▶옥에티? 신의한수? 호불호 갈린 공유 엔딩 여전히 의견분분하다. 굳이 신파 스토리를 끼어 넣어야 했냐는 반응 속에 영화의 백미를 장식했다는 호평도 전한다. 영화관의 풍경도 절반으로 갈린다. CF의 한 장면처럼 느낀 관객은 눈을 질끈 감으며 웃음을 참고, 그 마음에 깊이 공감한 관객은 눈물을 흘린다. 좀비에 맞서 혈혈단신 싸우던 공유가 마지막 선택을 하며 자신이 과거를 회상하는 지점은 의미가 어찌됐든 '부산행'의 명장면으로 꼽힐만 하다. 칸 영화제 등에서 영화를 먼저 접한 이들이 해당 장면에 대한 반대를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상호 감독은 끝까지 고집했고 강행했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오로지 관객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