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8일 프로야구 승부 조작 사건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발표했다. 향후 승부 조작 사건이 발생하면 20억원을 ‘벌금’으로 내겠다는 것이다. 이미 적립된 재원이 아니라 선수들이 300만원씩 각출하는 방식이다. 연대책임을 지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경제적인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책임 자세다. 그래서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에게 진지하게 요청하고 싶다. 현행 스포츠토토에서 프로야구가 불참하는 것은 어떠냐고.
물론 KBO 총재가 원한다고 해서 빠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스포츠토토, 즉 국민체육진흥투표권 사업 대상 종목은 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한다. 하지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일본의 사행산업 규모는 2014년 기준 순 매출 407억 달러로 미국에 이어 OECD 국가 중 2위다. 한국보다 1년 빠른 2000년부터 시작된 일본 스포츠진흥복권(토토)에는 프로야구가 포함돼 있지 않다. 과거 승부 조작과 불법 도박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일본 야구계는 스포츠 베팅에 매우 보수적이다. 2014년 일본 정부와 자민당이 2020 도쿄올림픽 경기장 건설 재원 문제로 프로야구를 토토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그러나 2015년 시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4명의 불법 도박 문제가 불거진 뒤 없던 일이 됐다. 당시 일본의 한 각료는 "이런 문제(도박)가 있으면 프로야구는 토토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스포츠베팅은 건전하게 유지된다면 스포츠를 향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고, 체육진흥 재원을 끌어올리는 순기능을 한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불법 베팅과 승부 조작이라는 역기능이 병존한다.
현재 정부의 스포츠토토 관련 정책은 이 역기능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2015년 스포츠토토의 환급률은 60.2%로 불법 스포츠도박 추정 환급률 90.2%에 비해 ‘착취’ 수준이다. 타 사행산업보다 훨씬 낮은 환급률이다. 현행 법령에서 불법 스포츠도박 참여자도 처벌을 받는다.
처음부터 범법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드물다. 합법 베팅을 이용하다 보면 어느 정도 중독성이 생기고, 불법 베팅이 더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알아채면서 불법 시장으로 이동한다. 위탁 사업자 쪽에서도 과거 여러 차례 “환급률을 높여 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체육진흥기금 수입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이 시작된 2001년에 프로야구는 대상 종목이 아니었다. 당시 KBO는 불법 도박 우려 등 이유로 참여를 거절했다. 그러나 2004년에 참여를 결정했다. 당시 KBO 관계자는 "불법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았고, 참여로 인한 수익 발생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2006년만 해도 수익배분금은 36억원 수준이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 야구 붐으로 크게 늘어났다. 2013년 야구계 전체가 받은 수익배분금은 189억에 이르렀다. 이 수익은 KBO와 구단 등에 배분된다. KBO만 따지면 수익금은 약 80억원이다. 2015년 구단 매출액 기준으로 프로야구는 4500억원 규모 사업으로 성장했다. 스포츠베팅으로 얻는 분배금에 크게 의존해야 하는 구조는 아니다.
프로야구가 스포츠토토에서 빠진다고 해서 불법 스포츠도박이 사라질 리는 없다. 단기적으로는 불법 시장에 더 많은 이용자가 몰릴 것이다. 하지만 신규 이용자를 줄이는 효과는 있다. 무엇보다 현재 정부는 범법자를 양산하는 스포츠베팅 정책을 취하고 있다. 범죄를 양산하는 정부의 정책에 프로야구가 협조와 공생을 이어 갈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