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및 배임·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장석(50) 넥센 히어로즈 대표는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자정을 넘겨 이뤄진 심사에서 서울중앙지검의 구속영장 청구는 기각됐다. 그런데 이날 이 대표는 또다른 사법 절차를 밟았다. 7월 22일 서울중앙지법(제22민사부)에서 패소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 대해 항소장을 냈다. 이날은 항소 마감일이었다.
이 대표는 지난 8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해 2008년 재미 사업가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으로부터 받은 20억원이 “(지분) 투자금이었다”고 시인했다. 9년째 이어진 지분 분쟁은 이 대표가 홍 회장의 지분 투자를 인정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이번 항소로 분쟁의 해결은 더 늦춰지게 됐다.
하지만 이 사건에 얽힌 지난 세 번의 판정 및 판결은 이장석 대표의 주장을 철저히 배척해왔다. 일간스포츠는 사건 관련 판정문과 판결문을 입수했다.
▶2012년 대한상사중재원 판정
2012년 12월 17일 대한상사중재원은 서울 히어로즈(넥센 구단의 법인명)는 홍 회장에게 “액면금 5000원인 기명식 보통주식 16만4000주를 양도하라”고 판정했다. 홍 회장이 구단 주주 지위가 아님을 확인해달라는 히어로즈의 신청을 각하하고 주식 양도를 판정한 것이다.
홍 회장은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히어로즈에 20억 원을 입금하고 지분 40%를 받는다는 계약을 했다. 이 대표는 지분투자 계약서는 ‘진정이 아닌’, 즉 날조된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재판에서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었다.
①신주 발행을 위한 구체적 절차가 계약서에 명기되지 않았고, 진행되지 않았다. ②홍 회장이 주식 양도 요구를 하지 않았고, 외국인투자촉진법상 절차(지분취득신고)를 진행하지 않았다. ③이장석 대표와 남궁종환 부사장이 20억원 상환에 연대책임을 부담했으므로 투자 계약으로 보기 어렵다. ④계약 당시 히어로즈 구단 기업가치가 300억원이었다. ⑤홍 회장이 자신은 투자가가 아니라고 발언한 사실이 있다.
이에 대한 중재원의 판단은 아래와 같다.
①지분 양도를 약정한 이상 신주 발행 절차는 히어로즈가 해야 한다. ②홍 회장이 양도 요구를 하지 않았어도 40% 지분 양도라는 계약은 유효하다. ③연대책임을 부담한다고 해서 20억원을 단순 대여금이나 광고권 계약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단순 대여라면 연대책임을 지겠다는 조건부 약정을 할 이유도 없다. ④구단 가치가 300억원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 신청인부터가 현재 자본 잠식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⑤홍 회장은 이 대표의 구단 운영상 부담을 염려해 한 발언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지금은 투자가라고 밝히고 있다.
이 대표 측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계약서대로 주식 40%를 양도해 달라는 홍 회장의 신청에는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①중재당사자인 히어로즈는 현재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②히어로즈가 양도를 위해 자기주식을 취득한다면 상법 341조 위반이다. ③홍 회장이 취득할 수 있는 최대 지분은 40%가 아니라 20%다. ④40%를 양도하더라도 계약 당시 발행 주식의 40%다.
하지만 이 주장은 중재인 3명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재인들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①히어로즈는 제3자로부터 주식을 취득해 양도하는 방법 등으로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 ②지분 양도를 위한 자기주식 취득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 ③40%가 맞다. ④계약서에 ‘전체 주식 비율’로 돼 있으므로 홍 회장은 합계 40% 지분을 가진다.
▶2014년 서울중앙지법 판결
상사중재원 판정을 근거로 홍 회장은 2013년 2월 주식양도 집행을 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이 대표는 중재판정 취소소송으로 맞섰다. 두 소송은 병합돼 2014년 1월 15일 1심 선고가 났다. 이 대표의 패소였다. 당시 재판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①상법341조 자기주식취득금지 규정 위반 주장은 이유가 없다. 홍 회장으로 받은 20억원으로 자기주식을 일시적으로 취득해 홍 회장에게 양도한다면 상법 위반이나 선량한 풍속 및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 ②재미교포 홍 회장이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고 국내 법인에 투자하는 것은 외국인투자촉진법 위반이라는 주장도 이유가 없다. 신고는 주식 취득 전까지만 하면 된다. 해당 법은 외국인투자 촉진을 위해 제정된 것이다. ③계약서가 위조됐다는 주장은 증거가 없다. 인감 날인·서명·계약서 내용 등으로 볼 때 진정한 문서로 추정된다.
▶2016년 서울중앙지법 판결
이 대표는 1심 패소 뒤 항소를 포기하고 새로운 소송을 낸다. 홍 회장에게 주식 16만4000주를 양도하는 건 불가능하며, 구단 주식 가치가 0원이므로 손해배상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서울중앙지법은 올해 7월 22일 선고에서 원고인 이 대표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대표의 주장을 배척했다.
①히어로즈가 주주들로부터 구주를 매입해 홍 회장에게 양도 가능하다. 주식 가치가 없다면 기존 주주들이 주식을 계속 보유할 이유도 없다. ②신주를 발행해 홍 회장에게 양도할 수 있다. 이미 주식양도의무는 확정됐다. 히어로즈 이사회는 양도 방안을 심의해야 할 의무가 있다. ③주식양도의무가 손해배상채무로 전환됐다는 주장은 이유가 없다. 손해배상청구는 채권자의 권리다. 홍 회장은 히어로즈에 주식양도 이행을 구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구단을 통해 여러 차례 언론에 “투자 계약서는 날조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재판에서 위변조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2008년 우리담배의 스폰서 취소로 구단은 심각한 재정난에 몰려 있었다. 이 시기 이 대표는 홍 회장이 아닌 다른 인사에게도 지분 투자를 제안했다. 복수의 증언에 따르면 이 대표는 모 기업 회장과 지분 20%를 40억원에 넘긴다는 협상을 진행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법원 판결문도 이 대표가 2008년 1월 홍 회장에게 지분 10%를 30억원에 넘기겠다고 먼저 제안했지만, 홍 회장이 40%에 20억원으로 변경 제안했다는 증거를 인정했다.
그리고 주식양도를 막기 위해 여러 주장을 동원했지만 모두 배척됐다. 당시 20억원은 큰 돈이었지만 구단 경영이 안정됨에 따라 사정이 달라졌다. 구단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2011~12년께 한 기업이 구단 인수 제안을 했다. 이 대표 쪽에서 1000억원을 불렀다”고 말했다.
세 번의 판정·판결에서 졌음에도 이 대표가 다시 항소를 택한 이유는 결국 지분 40%의 달라진 가치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획기적인 새 증거와 논리를 개발하지 않는다면 승산은 적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