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권 경쟁에선 한 발 밀려있는 위기다. 시즌 내내 크고작은 악재에 시달렸다. 하지만 젊은 투수들의 성장은 고무적이다. 지난 20년 동안 젊은 나이에 롯데 유니폼을 입은 뒤 정상급으로 성장한 투수는 손민한(은퇴)과 장원준(두산) 정도가 꼽힐 뿐이다.올 시즌엔 선발 자원만 세 명 발견했다.
지난해 5월 트레이드로 영입한 박세웅(21)은 기대만큼 성장 중이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체중을 불리고 근력을 강화했다. 잘 구사하지 않던 포크볼 비율을 높여 투구 패턴도 다양해졌다. 지난주까지 나선 21번 선발 등판해 7승 9패 평균자책점 5.13을 기록 중이다. 빼어난 성적은 아니지만 국내파 투수 중 유일하게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켜주고 있다. 약점으로 꼽히던 내구성 우려를 털어냈다. 롯데가 배출한 마지막 신인왕인 염종석의 뒤를 잇는 '안경 에이스'로 평가된다.
박진형(22)은 기대 이상으로 성장했다. 그는 지난 5월 부상으로 이탈한 송승준을 대신해 선발 기회를 얻었다. 한 달 동안 7경기에 선발로 나서 3승을 거두며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이후 노경은과 송승준이 로테이션을 채우며 다시 불펜으로 돌아갔다. 당시 송진우 KBS N 해설위원은 "아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구력이 좋고, 경기 운영 능력도 안정감이 있다는 평가다. 포크볼 구사 능력도 뛰어나다. 조원우 롯데 감독도 "맡은 보직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선수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송승준이 컨디션 난조로 2군으로 내려가면서 다시 선발진에 합류했다. 17일 고척 넥센전에선 4⅓ 6실점으로 부진했지만, 이전 2경기는 모두 6이닝 이상, 2실점 이하를 기록했다. 내년 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선수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박'씨가 마운드에 활력을 더했다. 바로 박시영(27)이다. 그는 23일 울산 kt전에서 팔꿈치 인대 통증으로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거른 박진형을 대신해 선발 등판했다. 5이닝 3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8-4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 2010년 데뷔 후 첫 선발 등판에서 승리 투수가 됐다.
인고의 시절을 거친 선수다. 2008년 입단 뒤 2010년 2경기 등판이 전부였다. 주목받지 못했다. 군 복무도 현역에서 했다. 하지만 묵묵히 칼을 갈았다. 그는 최전방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헌병으로 근무했다. 미군이 있는 부대라면 야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야구공을 놓지 않았고, 웨이트트레이닝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추격조부터 시작해 선발까지 나섰다. 조원우 감독도 "잘 준비된 선수였다"며 새 얼굴의 선전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어떤 보직이든 나설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이들 '박 트리오'의 등장과 성장을 본 롯데 올드팬들은 1990년 대 중반 '원조 박 트리오'를 떠올릴만하다. 당시에도 팀의 미래로 기대받던 박씨 투수 3명이 있었다. 박지철, 박보현, 박부성이 그 주인공이다.
박지철은 데뷔 시즌인 1994년 14경기(32⅔)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2.20을 기록하며 기대를 모았다. 데뷔 4년 차, 23살이던 1997년엔 14승(5패)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하며 팀 최다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박부성은 1군 무대에서 단 3시즌(1995-1997년)만 뛰었다. 하지만 특이한 투구폼으로 주목을 받았다. '반칙 투구' 논란이 일 정도로 타자가 타이밍을 잡기 어려운 투구폼이었다. 1996년 89⅓이닝을 소화하며 6승(7패)·평균자책점 3.91을 기록했다. 1995년 데뷔한 박보현은 빠른 공 구속은 140km대 초반이었지만 날카로운 포크볼이 인상적이었다. 꾸준히 1군에 머물며 불펜에서 궂은 일을 했다.
박세웅은 박지철을, 박시영은 박보현과 닮은 점도 있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주는 젊은 투수들이다. 1990년대의 '박 트리오'는 부상 등 이유로 오래 활약하진 못했다. 롯데는 두 번째 '박 트리오'가 더 높게, 더 오래 날아오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