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심수창. 사진=유병민 기자 한화 베테랑 투수 심수창은 올해 야구인생 2막을 시작했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한화와 4년 총액 13억원(계약금 3억원, 연봉 2억5000만원)에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을 했다. 프로 생활 13년 만에 처음으로 FA 자격을 얻었고, 소중한 권리를 행사했다. 그러나 그의 영입을 두고 비판이 여론이 있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와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수창은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시즌 45경기(선발 9경기)에 등판해 4승5패 2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5.95를 기록 중이다. 승리와 홀드, 세이브가 모두 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팀이 필요할 때 던졌다. FA 금액 대비 빼어난 활약을 펼치는 그에게 '착한 FA'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는 그 동안 야구보다 외적인 부분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는 야구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대전에서 심수창을 만나 새로운 야구인생에 대해 물었다.
- 지난주 5경기 연속 등판을 했다.
"5연투에 대한 관심이 높더라(웃음). 팀이 중요한 시기에 있기 때문에 필요하면 무조건 나간다는 생각 뿐이다. '혹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걸 안다. 그러나 요즘 시대 누가 아프고 힘든 상황에서 억지로 나가겠는가. 5연투를 할 때 코치님께서 '괜찮냐'고 의사를 물었다. 트레이너의 관리를 잘 받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았다. 당연히 '나갈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슈가 됐더라. 내가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공을 몇 개를 던졌겠는가. 어떻게 보면 투수는 공 던지는데 달인이 된 사람들이다. 자기 상태는 자기가 잘 안다. 내가 만약 격일제, 하루 쉬고 하루 나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선수라면 팀이 필요할 때 나가고 싶다. 선수의 존재 가치라고 생각한다."
- 30대 중반의 나이인데 힘들지 않나.
"프로 생활을 하면서 몸 관리의 노하우가 생겼다. 항상 100% 컨디션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에서 최상의 상태를 만드는 건 가능하다. 예년에 비해 많은 이닝을 소화했지만, 몸에 큰 무리는 없다. 팀에서 나를 필요로 할 때 열심히 던져야 한다."
-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한 FA 계약이었다.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웃음). 나는 댓글을 보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데 지인들이 악플 이야기를 해주더라. '보상 선수가 아깝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다른 핑계를 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화에 가서 무조건 보여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시작이 좋지 않았다. 스프링캠프에서 인플루엔자에 걸려서 시즌 준비에 차질이 생겼다. 빨리 복귀하고 싶었지만, 예상보다 회복이 더뎠다."
- 4월19일 한화 데뷔전을 치렀는데.
"컨디션이 어느 정도 올라왔다는 판단 아래 1군에 합류했다. 이제서야 이야기하는데 그날은 정말 변화구 위주로 던지면서 겨우 겨우 버텼다. 마운드에 올라가니 쉽지 않더라. 힘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감독님께서 내 상태를 아셨기 때문에 다시 2군으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1군 등판을 하면서 컨디션을 찾으라'고 하시더라. 한 달 동안 꾸준히 등판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5월말이 됐을 때 공에 힘이 붙는다는 걸 느꼈다. 포크볼 각도도 더 좋아졌다."
- 언급한 포크볼이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포크볼은 대학 시절부터 던졌다. 그러나 자신이 없어서 많이 구사하진 않았다. 프로 와서 꾸준히 던지면서 감각을 익혔다. 넥센과 롯데를 거치면서 포크볼을 두 가지 유형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떨어지는 공과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가 카운트를 잡는 공을 던지고 있다. 포크볼은 부상 우려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10년 넘게 던지면서 아픈 적은 없다. 나에게 맞는 공이라고 생각한다."
- 사이드암 변칙 투구까지 하고 있는데.
"롯데 시절 살아남기 위해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솔직히 처음 사이드암으로 던질 때 '심수창이 이제 갈 때까지 갔구나'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스리쿼터 유형으로 던져서 좋은 효과를 봤다. 그러니 반응이 달라지더라. 사이드암 변칙 투구는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었다."
한화 심수창. 사진 제공=한화 - 10년 넘게 프로 생활을 하면서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나도 신기하다. 아마추어 시절 팔꿈치가 아팠던 적이 있다. 그러나 프로 와서는 딱히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몸에 칼을 댄 경험이 없다. 운이 좋았거나 타고 났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운동을 하신 아버지 덕분이라는 생각도 한다. 이런 내 모습 때문에 주위에서 '재능으로 버텼다'는 평가를 한다. 그러나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정말 노력파다. 안되면 될 때까지 한다. '미련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노력한다. 내 스타일대로 하니까 한화 동료들이 '왜 그렇게 무식하게 많이 던지냐'고 물을 정도였다. 노력의 결과를 얻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방법을 더욱 믿고 있다."
- 어떤 경험인가.
"고교 시절 부상 때문에 2000년 지명 순위가 낮았다. 거의 꼴찌 순번으로 지명을 받았다. 의욕이 떨어졌다. 아버지께서 '대학에 진학해 다시 해보자'고 하시더라. 대학 시절 몸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다. 팔꿈치 인대 주위를 근육으로 감싸는 훈련을 많이 했다. 정말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길 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2004년 대졸 신인 가운데 최고 계약금을 받으며 LG에 입단했다. '노력하면 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 외모를 비롯해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 주목을 많이 받았다.
"편견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야구로 이슈가 된 적도 많다. LG 시절 조인성 선배와 일을 비롯해 넥센 시절 연패 기록, 롯데 이적 후 마무리 변신, 한화 이적까지. 이유를 모르겠는데, 내가 하면 이슈가 크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야구로 주목받고 싶다."
- 지금 행복한가.
"1군 마운드에서 던지고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LG 시절 류택현 선배가 '너는 띠동갑 후배와 야구하고 있으면 진짜 성공한 거다'라고 했다. 지금 띠동갑보다 한 살 많은 친구들과 야구하고 있다. 성공했다(웃음). 2005년으로 기억하는데, 구리 2군 구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퇴근길에 잠실구장을 찾았다. 외야석에서 LG의 경기를 봤다. 마운드에 있는 투수가 대단해 보이면서 부럽더라. 나도 꼭 저렇게 던지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FA 계약을 해서 여기까지 왔다. 지금 행복하냐고 물으면 '물론이다'라고 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