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시장 흥행의 맛을 톡톡히 본 빅4 대작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과 관객몰이에는 참패했지만 동시기 스크린에 걸린 '국가대표2'까지. 어느 때보다 뜨거웠고 주목도가 높았던 지난 한 달이다. 이에 따라 각 작품에 대한 관심과 디테일한 궁금증은 끊이지 않았고 감독과 주연배우들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화제 선상에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올 여름 개봉한 영화들의 특징은 돋보이는 악역이 존재했고 반가운 카메오가 대거 등장했으며 외국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는 것. 제 1선에서 영화 홍보에 최선을 다 한 이들 뒤로 2선에서 영화를 살린 또 다른 주역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봤다.
절대 악에게 희망은 없다. 애초 생각과 사상이 다르면 설득도 사치다.
성악설 성선설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한다는 개인주의와 이기심이 과거보다 팽배한 시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변할지 나 조차도 알 수 없는 본성이다.
내 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수 백, 수 천 명을 사지로 몰아넣은 이가 있는가 하면, 한 명의 목숨 따위는 중요치 않다며 대(大)를 위해 소(小)를 포기해야 한다는 핑계로 제 살 궁리에만 목 매다는 이들도 있다. '내 말이 법이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산 인물도 있고, 박쥐처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부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수 있는 간신도 있다.
여름시장 개봉한 영화들 속 악역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며 분노를 유발했지만 '과연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며, 하루가 멀다하고 믿기 힘든 소식이 들려오는 흉흉한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어설프지 않은 배우들의 열연은 캐릭터를 살린 첫 번째 단추이자 마지막 단추였다.
시대극, 현대극을 떠나 지극히 현실적이라 더 무서웠던 악역 3인방이다. 밉상 수치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막상 막하다. 이들이 있었기에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더욱 빛을 발했다. 정말 밉지만 무조건 존재 해야만 했던 인물들이기도 하다.
'부산행'(연상호 감독)을 대표하는 악역은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좀비떼가 아니라 맨정신으로 사람을 경계하는 김의성이다. 김의성은 '부산행' 개봉 전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라길래 시나리오도 보지 않은 채 무조건 출연 시켜 달라고 졸랐다. 근데 시나리오를 받고 보니 '괜히 한다고 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못된 인간이더라. 내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악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인천상륙작전'(이재한 감독)에서 북한군 림계진으로 분한 이범수는 오로지 제 목표와 목적만을 위해 산다. 사람이 죽는 것을 두려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은 채 즐기는 살인병기와 다름없다. "나를 설득시키면서 연기를 해야 했다. 내 캐릭터인데도 싫더라"고 토로한 이범수의 말에서 그가 캐릭터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엿보이게 했다.
이와 함께 '덕혜옹주'(허진호 감독) 속 윤제문은 현재까지도 '악'(惡)의 끝판왕이라 설명되는 친일파를 연기했다. 덕혜옹주 손예진을 어린시절부터 끈질기게 괴롭히고 어떻게 해서든 한국 땅을 못 밟게 만들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며 비아냥 거리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분노 섞인 눈물을 터뜨리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