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가 난관에 봉착했다. 최종 종착지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소환을 앞둔 상황에서 최측근이자 롯데그룹 2인자인 이인원 정책본부장(부회장)이 자살하면서 수사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더구나 롯데 임원들이 충성 경쟁하듯 입을 굳게 다물고 있고, 신격호 총괄회장이나 그의 셋째 부인 서미경씨 등에 대한 조사도 불투명하다. 롯데가 과거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처럼 '버티기'를 한다면 검찰은 신동빈 회장을 향한 칼을 빼지도 못할 수 있다.
2인자 이인원 자살에 수사 차질
28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주말 동안 회의를 열고 롯데 주요 인사에 대한 소환 일정을 재조정했다.
검찰은 지난 5월 롯데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검찰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롯데면세점 등에 매장 입점을 부탁하며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뇌물을 준 것을 계기로 비자금 등 롯데그룹의 각종 의혹을 수사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의혹의 중심에 있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 형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을 소환하지 못했다.
애초 검찰은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 3인방에 대한 조사를 끝낸 후 이달말쯤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을 소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측근 중 그룹 2인자인 이 부회장의 자살로 모든 조사 일정에 급제동이 걸렸다.
이 부회장은 지난 26일 오전에 소환될 예정이었지만 이날 새벽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산책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장례는 롯데그룹장 5일장으로 치러져 오는 30일 발인을 끝으로 마무리돼 검찰 수사도 미뤄지게 됐다.
검찰은 추석 전에 모든 수사를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쉽지 않게 됐다. 일부에서는 검찰이 이 부회장을 통해 거액의 횡령이나 비자금 조성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신동빈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유서에 "작년 초까지 모든 결정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했다. 신동빈 회장은 정도경영을 하려 애쓴 분"이라며 신동빈 회장을 두둔하고, "비자금은 없다"고도 했다.
롯데 또 '버티기'?
업계에서는 롯데가 이 부회장 자살을 계기로 '버티기'에 나선다면 검찰 수사가 '롯데 흔들기'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6000억원대의 증여세 탈루 의혹을 받고 있는 서미경씨가 일본에서 귀국하지 않고 있는 것을 두고 롯데의 '버티기'로 보는 시각이 있다.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씨를 소환하겠다고 밝혔지만 한 달 째 일정을 조율하지 못하고 있다. 서씨는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2%를 증여받는 과정에서 6000억원대의 증여세와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씨는 현재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일본에 있는 딸 유미씨 집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과거에도 '버티기'로 검찰 수사망을 피해간 전력이 있다. 지난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 신격호 총괄회장은 수년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결국 검찰 수사를 받지 않았다.
검찰은 이 부회장 자살에도 수사 차질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두 달 반 정도 수사를 하면서 많은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의 자살로 수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수사를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현재 롯데는 각종 비자금 조성과 증여세 탈루 의혹 등을 받고 있다. 특히 검찰은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흘러나온 계열사의 각종 의혹에 정책본부가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검찰은 서씨와 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의 6000억원대 증여세 탈루한 의혹에도 정책본부가 개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롯데홈쇼핑 인·허가 로비 의혹, 롯데케미칼 소송사기 및 '통행세' 의혹 등 계열사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