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울리 슈틸리케(62) 감독이 보여주는 전략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갓틸리케'라는 별명은 여전히 굳건하지만 그 틈새로 의문도 점점 커지고 있다.
시작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 2차전 최종 명단 발표 때부터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 수 아래의 상대로 꼽히는 중국과 시리아전을 앞두고 21명의 선수를 발탁했다. 이 가운데 손흥민(24·토트넘)은 중국전만 뛰고, 석현준(25·트라브존스포르)은 시리아전만 출전할 계획이었다. 그나마도 경기 장소가 레바논에서 마카오로 변경되면서 석현준의 소속팀 적응을 위한 '배려' 명목으로 명단에서 제외했다.
최종 명단은 이로써 20명, 손흥민이 빠지는 시리아전은 결국 19명의 선수로 임해야 하는 상황이 된 됐다. 이 때문에 '갓틸리케'는 중국전이 끝나고 부랴부랴 황의조(24·성남FC)를 대체 발탁했다. 그러나 왜 처음부터 23명을 채우지 않았는지 의문이 남는다.
물론 슈틸리케 감독에게도 이유가 있다. 그는 "어차피 경기를 뛰는 건 11명의 선발과 3명의 교체 선수까지 14명이다. 20명이면 충분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최종 명단에 들어도 경기에서 뛰지 못하고 돌아가는 선수를 위한 배려"라는 부연설명도 곁들였다. 실제로 슈틸리케 감독은 비슷한 이유로 지난 6월 유럽 원정 2연전 때도 20명의 선수만을 데리고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이 엔트리 법칙은 어딘가 이상하다.
부임 직후 슈틸리케 감독이 "어떤 선수든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한다", "대표팀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강조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슈틸리케 감독의 엔트리 법칙은 대체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리고 어떻게 이상해졌을까.
◇조금씩 줄어드는 최종 명단 슈틸리케 감독이 처음부터 '이상한 엔트리 법칙'을 내세운 건 아니다.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던 2014년 9월 8일. 그는 "최대한 결과를 내는 것이 감독의 책임"이라며 "좋은 능력 가진 선수들은 이끌고 못 따라오는 선수들을 어떻게 지도하는 지가 중요하다. 국내에서 좋은 선수를 발굴하고 비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지키 듯 데뷔전이었던 파라과이-코스타리카 친선경기 때부터 '제로 베이스'에서 선수들을 기용했다. K리그는 물론이고 유럽, 중동, 중국을 직접 찾아다녔고 대학 무대까지 발품을 팔아 최종 명단을 꾸렸다. "대표팀의 문은 열려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에게는 언제든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그 결과 아시안컵 황태자 이정협(25·울산 현대)이 탄생했고, 김진현(29·세레소 오사카)이 등장해 골키퍼 2강 체제를 무너뜨렸다.
슈틸리케 감독이 언제나 23명 엔트리를 다 채운 것은 아니다. 그는 아시안컵 이후 통상 23명인 최종 명단에 22명만 발탁했다. '23명을 선발할 경우 2경기를 치르더라도 최소 2∼3명은 훈련만 하다 소속팀으로 복귀하는 만큼 굳이 23명을 다 채울 필요는 없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2차예선 일정을 모두 마친 슈틸리케 감독은 그토록 염원하던 강팀과 대결을 위해 지난 6월 유럽 원정 2연전(스페인-체코)을 떠났다.
대표팀의 주축 기성용(27·스완지시티)은 당초 예정되어있던 기초군사훈련 일정까지 미루면서 원정길에 동참했을 정도로 소중한 기회였다. 이 때 슈틸리케 감독은 유럽까지 이동해서 경기를 뛰지 못하면 선수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20명의 선수만 선발했다.
◇배려 때문에 닫혀가는 대표팀 '열린 문'
이어 3개월 뒤, 슈틸리케 감독은 다시 한 번 20명으로 꾸려진 최종예선 1, 2차전 최종 명단을 발표했다. 여전히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신뢰를 보이는 팬들도 있었지만 엔트리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친선경기가 아닌 최종예선에서 굳이 20명을 고집했어야 하느냐는 의문이다. "최종예선을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최종예선에 참여한 아시아 12개국 중 23명 엔트리를 다 채우지 못한 팀은 사우디아라비아(22명)와 한국 뿐이다. 심지어 우리와 맞붙은 중국은 25명을 데리고 한국 원정길에 올라 경기 전날 고심 끝에 23명의 최종 명단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시아뿐이 아니다. A매치 기간을 맞아 친선경기 및 지역예선을 치르는 국제축구연맹(FIFA) 상위 랭킹 국가들도 23명 엔트리를 꽉 채웠고, 아르헨티나는 27명을 불러들여 최종엔트리 경쟁을 시켰다. 월드컵을 향한 길목에서 '못 뛰는 선수의 사기 문제를 배려해서' 23명을 채우지 않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최종예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선수들의 피로 누적과 부상 등의 변수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미 슈틸리케 감독은 2015 호주 아시안컵 당시 이청용(28·크리스탈 팰리스)의 부상 낙마와 감기몸살에 시달린 선수들로 인해 선수 기용에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말도 바꿨다. 당초 손흥민이 빠진 자리에 대체 선수를 선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중국전에서 3-2 진땀승을 거두자 급하게 황의조를 대체 발탁했다. 시리아전(6일)이 열리는 말레이시아 세렘반으로 건너간 그가 대표팀과 발을 맞출 시간은 겨우 2~3일 뿐이다. 예전에 대표팀에서 뛴 적이 있다고는 해도 조직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처음부터 23명을 꽉 채웠다면 하지 않았어도 될 고민이다.
시리아전은 슈틸리케 감독의 '20명 엔트리'가 서게 될 진짜 실험대로 손꼽힌다. 하지만 시리아전에서 대승을 거두더라도 근본적인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최종예선은 앞으로 8경기나 더 남아 있고, 그 모든 경기가 곧 슈틸리케 감독의 실험대다. 적어도 "대표팀의 문은 열려 있다"던 슈틸리케 감독이 스스로 대표팀의 문을 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