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만 축구로 뜨거운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각, 지구 건너편 유럽도 2018 러시아월드컵 지역 최종예선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 티켓이 가장 많이 걸려 있는 유럽은 5일(한국시간)부터 54개 대표팀이 9개 조로 나뉘어 1년2개월간의 최종예선 레이스에 돌입했다.
유럽 지역 예선에 걸려 있는 티켓은 모두 13장이다. 유럽 다음으로 많은 아프리카(5장)의 2배가 넘지만, 각 조 1위 팀에게만 본선 직행 티켓이 주어지고 2위 팀들은 한 차례 더 통과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유럽 지역은 1차전부터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올해도 강력한 우승후보인 2014 브라질월드컵 우승팀 독일과 '축구종가' 잉글랜드는 먼저 승전보를 올렸다. 웨일즈와 스페인, 이탈리아는 6일 열린 경기에서 압승을 챙기며 위세를 보여줬다. 저마다 우승해야 하는 이유와 물러설 수 없는 사연이 있다. 바로 '총성없는 축구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 '명불허전'…독일·잉글랜드 첫 승전보
'디펜딩 챔피언' 독일은 2연패를 향한 닻을 올렸다. 요하임 뢰브(56) 감독이 이끄는 '전차군단'은 노르웨이와 최종예선 C조 1차전에서 토마스 뮐러(27·바이에른 뮌헨)의 활약을 앞세워 3-0 완승을 거뒀다. 뮐러는 0-0으로 팽팽하던 전반 15분 문전 혼전 상황에서 침착하게 왼발슛을 날려 선제골을 완성했다. 이어 전반 종료 직전에는 정확한 패스로 조슈아 키미히(21·바이에른 뮌헨)의 추가골을 합작했다.
팀 구성부터 조 편성까지 이보다 완벽할 수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위인 독일은 북아일랜드(28위)·체코(34위)·노르웨이(50위)·아제르바이잔(136위)·산 마리노(200위)와 함께 C조에 묶였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가장 앞서는 데다 전 대회 우승팀이라는 자부심마저 안고 있다. 최근 독일을 상징한 '베테랑'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32·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은퇴를 선언했지만, 2014년 우승 트로피를 함께 들어 올린 '주장' 마누엘 노이어(30)와 제롬 보아텡(28·이상 바이에른 뮌헨)·토마스 뮐러가 건재하다. 새롭게 합류한 율리안 바이글(21·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23세 이하 선수들이 제 몫만 해준다면 최종예선 통과는 무난할 것이라는 평가다.
'브랙시트'와 함께 유럽 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마저 떨어진 잉글랜드는 러시아 월드컵에 자존심을 걸었다. 신임 사령탑인 샘 앨러다이스 감독의 데뷔전이기도 했던 잉글랜드는 슬로바키아와 1차전에서 1-0 승리를 거뒀다. 사실 이번 월드컵을 위해 칼을 갈아 온 선수는 따로 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웨인 루니(31·맨체스터유나이티드)다.
그가 걸어가는 길마다 새 역사가 쓰이고 있다. 루니는 슬로바키아전을 통해 A매치 116경기 출장 기록을 작성했다. 이로써 데이비드 베컴(은퇴·115경기)의 필드 플레이어 최다 출전 기록을 갈아치웠다. 현재 잉글랜드 통산 최다 A매치 출전 기록은 골키퍼인 피터 쉴튼(은퇴)의 125경기다. 남은 최종예선을 통과해 러시아 본토에 입성한다면, 루니는 잉글랜드 축구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다. 그는 "내가 지금껏 뛴 시간은 위대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경기에서 승점 3점을 챙기는 것"이라며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 죽음의 A조, 너를 눌러야 내가 산다
유럽 축구 팬의 관심은 '죽음의 A조'에 쏠려 있다.
A조에는 FIFA 랭킹 5위로 톱시드를 배정받은 네덜란드(현재 26위)를 필두로 프랑스(7위)와 스웨덴(40위) 등 강력한 3개 팀이 모여 있다. 네덜란드는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에 올랐고 프랑스는 8강까지 진출했다. 반면 스웨덴은 포르투갈에 밀려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해 이번 만큼은 이를 악 물었다. 스웨덴은 2002년, 2006년 16강 성적을 끝으로 월드컵 조 예선에서 늘 죽음 조에 배치돼 지역 예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여기에 '다크호스'로 평가받는 불가리아(77위)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강력한 조 1위 후보인 네덜란드 대표팀의 대니 블린트(55) 감독은 "우리와 만난 상대들 모두 좋은 팀들이다. 유로와 월드컵에서 우승을 경험해 본 프랑스가 가장 눈에 띈다. 불가리아와 벨라루스도 약한 팀이 아니다. 화끈한 승부가 될 것"이라며 은근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스페인(8위)과 이탈리아(10위)가 편성된 G조 역시 진검승부가 예상된다. 첫 경기부터 대승을 거두며 기 싸움을 시작했다. 스페인은 6일 열린 리히텐슈타인과 1차전에서 8-0으로 대승을 거뒀다. 특유의 짧은 패스플레이와 높은 점유율을 발판으로 '골잔치'를 벌였다. 이탈리아는 같은 날 열린 이스라엘과 첫 경기에서 3-1로 승리했다. 무려 두 명의 선수가 퇴장당했지만 후반 38분 세 번째 추가골을 넣는 등 상대를 농락했다. 하지만 무려 8골을 넣은 스페인에 득실 차에서 밀려 조 2위를 유지하게 됐다. 양국은 다음달 7일 '아주리군단'의 홈에서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벌인다.
'황금세대'를 연 웨일스는 오스트리아(22위)·세르비아(47위)·아일랜드(31위)·몰도바(165위)·조지아(118위)와 함께 D조에 배정됐다.
2012년 82위였던 웨일스는 랭킹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으며 11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려 톱시드를 받았다. 비교적 약체와 한 조에 편성되자 웨일스 팬들은 만세를 불렀다. 지난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이후 60여 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로 개러스 베일(26·레알 마드리드)이 월드컵 무대를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는 기대 때문이다. 베일은 애런 램지(25·아스널)와 함께 황금세대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 유로 2016에서는 4강에 오르며 부활 신호탄을 쐈다.
베일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웨일스는 6일 열린 몰도바와 1차전에서 베일의 2골1도움 '원맨쇼'에 힘입어 몰도바를 4-0으로 완파했다. 베일은 경기 뒤 "완벽하고 경외로운 출발이었다"며 2차전 준비에 몰두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