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은 1인자다. 최민식·송강호 등 상위 1% 연기파 남자배우들과 어깨를 견줄만한 여배우를 꼽는다면 전도연이 유일무이하다. '배우들이 존경하는 배우' '후배들이 꼽는 롤모델' '함께 연기해 보고 싶은 파트너' 등 모든 워너비에는 늘 '전도연'이라는 이름 석자가 있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 최초 '칸의 여왕'이 전도연이라 참 다행이다.
전도연은 솔직하다. 너무 솔직해 당황스러울 정도. "속닥거리지 말고 앞에서 그냥 다 얘기해~" "나이드니 얼굴 살만 쭉쭉 빠져 큰일이다"고 말하는 전도연 앞에 '척'이라는 단어는 없다. 작품 속 늘 예민하고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치지만 카메라 밖으로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도도함을 벗어 던진다. 꾸밈없는 자연스러움 역시 독보적인 매력. 화장기 하나없는 얼굴은 전도연의 가장 큰 무기다.
전도연은 데뷔 26년 차다. 20여 년간 톱배우 자리를 유지하며 더 이상 올라갈 곳 없이 올라선 전도연에게도 2016년은 조금 특별하게 남는다. 영화 '무뢰한'으로 제5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11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작 tvN '굿 와이프'도 성공적이다. 두 작품에서 전도연이 맡은 캐릭터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모두 '김혜경'. 전도연은 "전도연보다 김혜경이 더 익숙한 순간이 있었다"며 김혜경에 대한 애정을 끝없이 표했다.
백상예술대상 수상 직후 전도연과의 만남을 고대했지만 당시에는 전도연이 어떠한 것에도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굿 와이프'에 푹 빠져있었다. 결국 '굿 와이프' 종영 시기 백상 수상 뒤풀이가 진행됐고 두 명의 김혜경에서 전도연으로 완벽하게 돌아온 순간 마주할 수 있었던 전도연이다.
시청자들은 매주 두 번 씩 볼 수 있는 전도연에 환호했지만 정작 본인은 하루 25~26회차 촬영을 소화하며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잠 못자는 강행군 속에서 결국 스스로를 이겨냈고 어려운 숙제를 끝냈다. 한결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더 이상 혼자만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다"고 고백한 전도연은 "상을 받아도 연기상보다 작품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간절해졌다. 백상때 감독님이 함께 감독상 후보에 올랐는데 끝나고 '무뢰한' 팀과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너무 큰 행복을 느꼈다. 드라마를 끝낸 후에도 이 사람들과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고 밝혔다.
드라마 종영 후 만난 전도연은 홀가분했다. 앞서 말했듯 꾸밈없는 소탈함이 그의 매력. 배우병과 담쌓은 매력에 빠져들자 어느덧 샴페인 세 병을 비웠다. 특유의 웃음인 "허허허헝. 너무 기분이 좋아요. 그냥 모든 게 다"라며 세 시간 뒤 자리를 떠났다.
-취중토크 공식질문이에요. 주량은 어떻게 되나요. "주량을 잘 모르겠어요. 술을 좋아해요. 일주일에 두세번 마신는데 '굿 와이프' 촬영 시작인 4월 중순부터는 못 마셨어요. 워낙 촬영하는데 바뻐 먹을 시간이 없어요. 영화는 촬영 도중 비는 시간이 많은데 드라마는 아니잖아요."
-특별한 주사가 있나요. "술 안 마셔도 그렇지만 잘 울어요. 또 솔직해지죠."
-목소리가 안 좋아요. "목이 잠긴건 아닌데 지금 이 상태가 촬영 내내 지속됐어요. 한 번 감기 걸리면 오래 가는데 쉴 틈이 없어 더 그런가봐요."
-요즘 잠은 좀 자나요. "잠을 몰아서 자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촬영 때보다는 많이 자고 있는데 마음인지 몸의 피로인지 자도 풀리는 거 같지 않고요."
-지난번 간담회도 '택시'에서도 그렇고 원래 잘 우나요. "맞아요. 잘 우는 편이긴 해요. 그때 그때 감정에 이입되니 눈물이 막 흘러요."
-슬퍼서 우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그냥 마지막 촬영 때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뚝뚝 흘러요. 일상이 아닌 특별함에 감사함을 느끼다보니 그래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에 늘 자극받고 감동받다보니 감정도 많이 움직이죠."
-정작 백상예술대상서 상을 받곤 울지 않았어요. "그 당시 울기에는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넋을 놓았다는 표현이 딱이에요. 대신 무대 내려와서 울었어요. 칸에서도 그랬고요. 가끔은 상을 받는 걸 알고 올라갈 때도 있어요 그때는 준비한 소감도 좀 챙기는데 백상예술대상 때는 전혀 몰랐으니깐요. 한 번은 엄마가 '남들은 가족 얘기를 하는데 넌 왜 그러냐'고 핀잔을 주더라고요. 자유롭게 감정을 놓을 수 없는 곳이 무대에요. 칸에서도 너무 멀쩡하게 상 받아놓고 호텔로 돌아가니 그렇게 눈물이 났어요."
-작품 보면서도 잘 우나요. "잘 웃고 잘 울어요. 무언가를 볼 때 생각도 많고 여운도 길게 남아요. 쉽게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고요. 좀 이상한 사람 같나요.(웃음)"
-'택시'에 출연했어요. 예능은 굉장히 오랜만인데. "오랜만이지만 함께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과 있어 좋았어요. 어린 시절 알았던 PD님이 '택시'를 만들더라고요. 드라마도 잘 됐으니 한 번 나와달라고 하는데 거절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다른 배우들도 설득했어요. 그래도 다같이 남기면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정 안 되면 혼자라도 나가고 싶었는데 다들 흔쾌히 응해줘서 너무 고마웠죠."
-팀 전체를 설득하는게 쉽진 않았을텐데요. "저희 팀워크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좋았어요. '굿 와이프' 팀워크를 보여주러 가자고 선동했죠.(웃음) 저 포함해 배우들이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처음부터 어색할까봐 제가 다 민망하고 전전긍긍했어요. 생각보다 재미있는 장면이 많이 나오긴 했는데 두 번 다시 나서서 섭외하진 않으려고요."
-말 주변이 나쁘지 않던데요. "아니에요. 토크쇼를 무서워해요. 인터뷰도 마찬가지고요. 말이 무서워요. 제일 편하게 말해야하는데 불편하고 낯설고 두렵고요. 이미지가 깨지는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누군가 제 얘기를 듣고 참고할까봐요. 그만큼 책임질게 많잖아요. 또 제 한 마디는 일부인데 전체인듯 기억할까봐요. 그런 오해를 받는다고 또 그때마다 해명할 수도 없고요. 어쨌든 제가 안고 가야할 몫이니깐요."
-'굿 와이프'는 11년만에 드라마에요. 선택 이유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어요. "영화나 드라마 모두 한 매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굳이 드라마를 몇 년간 안 했다는 인식이 없었어요. 그러다 문득 '굿 와이프'를 받았고 좋은 작품이라 참여하고 싶었는데 11년만에 드라마 출연이라는게 이리 화제일 줄 몰랐어요. 사실 아직까지도 드라마와 영화 속 연기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어요."
-전도연 씨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요. "분명 다르긴 하죠. 영화는 충분히 생각하고 찍은 뒤 다시 촬영할 여유도 있고요. 드라마는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하죠. '굿 와이프'도 꽤 일찍 첫 촬영을 시작했는데 결국은 이렇게 시간에 쫓기게 됐고요. 연기적으로는 비슷해요. 조금 더 순발력을 필요로하고 근무환경이 다르죠."
-첫 촬영이 나나와 붙은 신이었다고요. "너무 어색했어요. 영화는 카메라와 일대일 대립인데 드라마는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의 시선이 있으니 당연히 떨리죠. 또 나나는 원래 알던 친구가 아니고요. 상황이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그걸 또 얘기할 순 없으니깐요. 그런데 오히려 나나가 듬직했어요. 촬영 끝나고 '넌 안 떨리니' 물었더니 본인도 엄청 떨었다고 하던데 제가 보기엔 당돌했어요."
-서로 의지할 수 있었겠네요. "맞아요. 우리가 조금 편안해 질 수 있는 건 서로에 대한 의지였어요. 몇년 차 이런 걸 떠나서 동지의식을 느낀거죠. 윤계상과 첫 촬영때는 눈물을 흘려야하는데 눈물이 안 나오는 거에요. 많은 사람들은 '전도연 연기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라는 시선으로 보는데 힘들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나니 서로 편해졌어요."
-첫 드라마인 나나가 불안하진 않았나요. "캐스팅됐다는 소식만으로 그렇게 시달릴 줄 몰랐어요. 그런데 첫 촬영때 알았어요. '아 대중들이 좋아하겠구나' 싶었죠. 첫방송이 된 후 나나에 대한 반응에 제가 다 통쾌했어요. 한편으론 '저렇게까지 험한 소리 들으면 견디다니'라며 대단했고요. 나중에 나나에게 '이건 오롯이 너가 해낸거야'라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오랜만에 온 드라마 현장이 적응하기 힘들진 않았나요. "우리 드라마는 아니지만 쪽대본이나 생방송 시스템에 대한 지적이 많잖아요. 오히려 예전이 더 심했어요. 과거엔 정말 씻으러 집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죠. 그 정도로 더 열악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니깐요. 물론 과거에도 쪽대본은 있었고요. 그때는 체력이 되니깐 어떻게든 악착같이 버텨냈어요. 지금 그때 같으면 어휴…"
-전혀 힘들진 않았을텐데요. "처음부터 감독님에게 '힘들지 않게 해달라'고 했더니 '잠은 재워주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분량이 끝나면 현장을 떠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어요. 배우들보다 더 먼저 와 있고 나중에 떠나고. 스태프들 앞에서 힘들다고 하는 건 아니죠. 그때마다 NG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그래서 대본 외울 때도 혼자 힘들고 말지 못 하는 걸 현장가서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하루에 24회차 이상 찍는 날도 있으니 압박감으로 차 안에서 대기하다가 울기도 했어요."
-원작이 있었지만 내용은 마음에 들었나요. "그럼요. 다만 감독님께 김혜경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어요. 원작의 5~6시즌을 단 16회에 담아야하니 짧다는거 알지만 수동적인 김혜경이 아닌 능동적인 여자로 보여지고 싶었어요. 무너지는게 아니라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바랐고요."
-의견을 내세워 수정된 부분도 있나요. "전체적인 맥락이 바뀌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참고해 준 건 있어요. 사실 영화는 감독과 배우들이 얘기를 나누며 그 자리서 수정되는 부분이 많은데 드라마는 그런 게 없더라고요. 촬영이 힘들어 감독님을 보기가 힘들었으니깐요. 만나질 못 하니 모바일 메신저로라도 의견을 피력했어요."
-최후에는 윤계상을 선택했어요. "선택이라기보단 한 순간에 움직인 솔직한 마음이 맞죠. 한 순간 솔직해진다고 평생 행복해지는게 아니니깐요. 그 순간은 김혜경도 사람이고 여자이니… 마음에 든 결말이었어요."
-극중 윤계상과 키스 후 곧바로 유지태와 했어요. "감독님이 미리 불러서 물어봤어요. '윤계상과 키스하고 바로 유지태와 키스할 수 있겠냐'고요. 물론 이해되지 않는 상황인데 앞뒤 내용을 알고 싶었어요. 대본 보고는 이해하지 못 할 상황이었는데 촬영을 하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촬영 전에는 단순한 욕망이고 순간의 솔직함이라고 느꼈는데 촬영 후 처절한 신이라고 여겼어요. (김)혜경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그 장면을 찍고 혜경이 불쌍하다고 느꼈고 응원하고 싶었어요."
-사실 멋있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당당한 김혜경을 보여주곤 싶었지만 멋있진 않았어요. 더 여성스럽고 남편을 감싸안을 줄도 아는 포용적인 여자를 그리고 싶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가 강한 남자들과 대등해지면서 이 여자한테 기대게 되고 그 여자를 끌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요."
>> 2편에 계속
김진석·조연경 기자 superjs@joongang.co.kr 사진=박세완 기자 영상=이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