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한국시간) 보트사고로 사망한 호세 페르난데스처럼 메이저리그에선 비극적인 사고로 숨을 거둔 선수는 꽤 많다.
초기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고의 주인공은 1903년 사망한 '빅 에드' 에드 델라헌티였다. 내·외야를 모두 맡을 수 있었던 델라헌티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슬러거였다. 1899년에는 타율 0.410을 기록하며 타격왕과 타점왕을 모두 휩쓸었다. 16년 통산 4할 타율만 세 시즌. 그가 기록한 통산 타율 0.346은 메이저리그 역대 5위(1위 타이콥 0.366)에 올라 있다. 하지만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추락사하는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1903년 7월 델라한티는 기차 내에서 위스키를 마신 후 면도칼을 휘두르며 승객을 위협했고, 기차에서 쫓겨난 후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자살과 타살 여부에 대한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의문이 증폭됐다. 델라헌티는 1945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1920년 레이 채프먼은 타석에서 공을 맞고 사망했다. 클리블랜드 소속이었던 채프먼은 뉴욕 양키스 에이스 칼 메이스가 던진 몸 쪽 높은 공에 왼 관자놀이를 직격 당했다. 1루 쪽으로 두어 걸음 가다가 쓰러진 채프먼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2시간 뒤인 1920년 8월 17일 새벽에 숨을 거뒀다. 경기 중 머리에 공을 맞고 사망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번째 선수였다. 채프먼 사건은 훗날 타자들의 헬멧 착용이 의무화 되는 출발점이 됐다.
피츠버그의 전설이자 히스패닉 야구선수들의 영웅인 로베르토 클레멘테의 사망은 여러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1972시즌에 통산 3000안타를 기록한 클레멘트는 더 이상의 안타를 추가하지 못했다. 그해 12월23일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 강진이 발생하자 의료품과 식료품을 보냈다. 하지만 구호물품이 부패한 관료들에 의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직접 화물 수송기에 올라탔다. 하지만 12월31일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했다. 클레멘테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고, 메이저리그는 1973년부터 사회 공헌에 이바지한 선수에게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여하며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1993년에 사망한 스티브 올린은 페르난데스처럼 보트사고를 당했다. 사이드암 마무리투수였던 올린은 1989년 클리블랜드에서 데뷔해 4년을 뛰었다. 1992년에는 8승 5패 29세이브 평균자책점 2.34로 리그를 대표하는 구원투수로 성장하는 듯 했다. 하지만 1993년 초 동료 팀 크루스, 밥 오헤다와 보트를 타고 나갔다가 부두에 충돌해 숨을 거뒀다. 가까스로 오헤다는 생존했지만 올린과 크루스는 팬들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밖에 양키스를 대표했던 포수 서먼 먼슨과 빅리그 통산 82승 투수 코리 라이들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LA에인절스 투수 유망주였던 닉 아덴하트는 2009년 4월 지인들과 차량을 타고 가다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음주차량과 충돌해 사망했다. '커브의 달인'으로 불렸던 대럴 카일은 2002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2014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외야 유망주 오스카 타베라스가 교통사고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