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원대의 배임·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떨어지면서 롯데는 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신 회장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 기소가 확정되면 한·일 롯데그룹 총수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어 롯데로서는 경영 공백이 현실화된다. 더구나 일본인에 경영권이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검찰 "롯데 이익 빼돌리기 역대 최대"
26일 검찰은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롯데그룹 비리 의혹을 수사한 지 109일, 신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한 지 6일 만이다.
검찰은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창 청구를 결정하기까지 많이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기업 5위 총수인데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 롯데 측에서 주장하는 경영권 향배 등을 두루 살폈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에 따른 형평성 문제 등을 우선해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서미경씨 등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 방침을 결정했다.
검찰은 오너 일가가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돈을 빼돌렸다는 점을 주요하게 보고 있다. 검찰 측은 "총수 일가의 이익 떼먹기 또는 이익 빼돌리기와 관련된 금액이 1300억원이다. 이는 지금까지 재벌 비리 수사에서 적발된 가장 큰 금액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신 회장이 오너 일가를 그룹 계열사 등기이사로 올려놓고 별다른 역할도 없이 수백억원의 급여를 받게 한 혐의, 270억원의 롯데케미칼 소송 사기, 롯데건설의 300억원 비자금 조성, 계열사간 부당거래와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에 1000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 등을 조사하고 있다.
신 회장의 구속 여부는 28일 오전 10시 30분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경영 공백 불가피…'원리더' 지위 잃을 수도
신 회장이 구속 기소될 경우 롯데의 경영 공백은 불가피하다. 특히 신 회장이 그룹 대표 자리에서 내려올 가능성이 높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과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임직원들이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어 신 회장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경영자가 개인 비리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고 구속되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신 회장과 공동 경영을 꾸리고 있는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의 단독 경영 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일본 롯데의 경영진이 대부분 일본인으로 구성돼 있어 경영권이 일본으로 아예 넘어갈 수 있다.
신 회장이 갖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은 1.4%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형과의 경영권 싸움을 이길 수 있던 것도 종업원지주회·임원지주회 등 최대주주들의 지지 덕분이었다.
신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선 등 각종 프로젝트도 차질을 빚게 된다.
호텔롯데 상장 작업은 사실상 물건너 간다. 신 회장은 지난해부터 수차례 공식적인 자리에서 호텔롯데 상장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약속해왔지만 검찰의 수사로 '올스톱' 상태다. 호텔롯데 상장은 롯데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나온 묘안이었다. 상장 주관사로 선정된 증권사들도 대형 기업공개에 대한 기대를 했다가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신 회장이 구속되면 향후 4~5년 내의 상장은 기약할 수 없다. 한국거래소에서는 분식회계나 배임·횡령 등 혐의가 드러난 비상장사는 3년 간 상장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호텔롯데의 지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지분과 영향력이 줄어드는 상장 작업을 진행할리 만무하다.
현재 호텔롯데 지분은 일본 롯데홀딩스가 19.07%, 일본 롯데홀딩스가 지배하는 L투자회사가 72.34%, 광윤사가 5.45%를 보유하고 있다. 애초에 롯데 측은 호텔롯데 상장으로 일본 롯데의 지분은 56%까지 떨어지게 된다고 밝혀왔다.
롯데의 투자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시내 면세점 특허권 취득에 실패한 롯데면세점은 오는 12월 특허권 재취득을 노리고 있지만 이 또한 불투명해졌다. 롯데케미칼이 추진하던 액시올 인수는 지난 6월 '그룹이 어려움을 직면한 상태'라며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지 사흘 만에 철회된 바 있다.
롯데그룹은 이날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안타깝다"며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성실히 소명한 후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