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불에 떨어진 정우성(44)이다. 정우성의 대표작, 인생 연기를 갈아치울 작품이 탄생했다. 떼주물 '상남자' 영화는 정우성에게도 '첫 경험'이다. 연기 괴물들 사이에서 고군분투 했고 손가락이 여러 번 부러지는 고통도 참았다.
영화 '아수라'(김성수 감독) 속 정우성은 우리가 알고 있던 정우성이 아닌 또 다른 정우성의 얼굴을 보여준다. 청초했던 20대 정우성은 40대에 상처투성이가 됐고 잘생김은 여전하고 분위기는 한층 깊어졌다. 과연 이번 작품을 통해 정우성에게도 '연기상 트로피'가 돌아갈지 지켜 볼 일이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남자 영화로 돌아왔다.
"처절하고 강하다. 그래서 배우 본연의 한 모습만 지킬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연기쪽으로는 워낙 인정받고 출중한 사람들과 함께 해 나도 그 사이에서 건전한 경쟁을 펼치기 위해 애썼다. 원없이 몰입했다."
-오프닝 비주얼이 인상적이다.
"VIP시사회 때 영화를 본 감독님들도 정우성이 아닌 배우가 나와 놀랐다고 하시더라. '정우성인데 정우성이 아니네?'라고 느껴져 당황하셨다고. 효과적인 이입을 불러 일으킨 것 같다."
-잘생긴 이미지를 망가뜨리기 위해 일부러 노력한 것인가.
"외형적으로나 경력에서 비춰지는 정우성의 이미지를 깨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잘생긴거야 원래 잘생겼고. 이번엔 연기를 좀 잘했으니까 다른 모습처럼 보인게 아닐까?(웃음) 의도된 망가짐은 아니다."
-한도경이라는 캐릭터는 쉽게 이해 되던가.
"전혀. 시나리오를 읽기 전에 '하겠다'고 했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내가 이걸 왜 하겠다고 했을까?'라고 후회했다. 한도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관객들이 쉽게 쫓아오지 못할 것 같기도 했다. 애매한 중간 입장에서 맛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분석하고 연구했나.
"분명 뭐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분석하고 파헤쳤다. 무엇보다 '감독님께서 오랜 시간동안 공들인 이유가 있을거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거야'라는 생각으로 매달렸다. 엄청 오랜시간의 공백기가 있지 않으셨냐. 그 시간 속에서 어떤 성찰이 있으셨을 것이가 생각한다. 또 나이대를 바꿔 보면서 감독님 나이대 표현하고자 하는 깊은 색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보통은 내 입장만 생각하기 마련인데 감독님을 믿었다."
-어느 정도 답은 갖고 촬영했나.
"아니. 솔직히 못 찾았다. 다만 파헤치고 고민했던 그 스트레스 자체가 한도경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꿈을 상실해 가는 나이대의 남자가 선택 앞에 불안해 하고 자기도 모르는 죄를 떠 안게 되는 스트레스를 그리려 했다. 이도 저도 아닌 캐릭터라 고민했는데 그게 한도경이더라. 그 느낌 그대로 연기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한도경은 어떤 남자인가.
"왜 남자들은 보통 '객기'라는 것이 있지 않냐.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려는. 한도경도 딱 그런 인물인 것 같다. 맞으면 대항은 못해도 '날 때려?'라고 노려 보면서 버틸 때까지 버틴다는 느낌을 주는. 나약한 모습을 끝까지 보이고 싶어하지 않고 몇 푼도 안 되는 자존심 마저도 구겨지고 있지만 모양새 빠지는건 또 싫어하는 '보통의' 남자다. 그 감성은 여성 보다는 남성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욕설 대사가 상당하다.
"이렇게 욕을 많이 한 작품이 없다. 욕을 사용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다르다. 욕설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지만 사용을 워낙 안 하는 쪽이었다. 그래서 익숙해지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촬영을 할 때는 나도 모르는 순간 도경의 말투가 됐다. 나도 모르게 툭툭 욕이 나가니까.(웃음) 배우들과 잡담하면서도 던지고 (주)지훈이가 현장에 오면 '지훈이 왔냐~ 반갑다 XX'이라고 하고. 하하. 그럼 또 지훈이는 형이 살갑게 대해 준다고 좋아하고 그랬다. 주변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안 어울린다고 하더라."
-어색함 보다는 낯설었다고 해야 할까?
"원래 욕이라는 것이 상대에게 뱉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것 아니냐. 뭔가 풀리지 않거나 상황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았을 때 답답한 마음을 표출하는 것이니까. 도경이의 욕은 계속 해서 자기 자신에게 내뱉는 자책과 같다. 욕 자체보다 한도경이라는 캐릭터에 반응을 한 것이 아닐까? 놀랐다고 하는 걸 보니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잘 전달된 것 같다."
-유리컵을 씹어먹는 장면은 처음에 반대했다고.
"현실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 강하게 느껴졌다. '굳이 필요할까?' 싶기도 했다. 그것도 역시 감독님의 시선에서 이해했고 씹어먹는 연기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유리컵도 씹기 좋게 잘 만들어 놔서 부드럽고 편안했다.(웃음)
-한도경 빠져 나오지 힘들지 않았나.
"내가 잠버릇이 없는 사람인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이를 갈고 잠꼬대를 하더라. 다행히 곧바로 '더킹'이라는 작품을 촬영했고 한도경과는 정반대 인물을 연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잊었다. 잔상에 허우적거리지는 않았다. 일이 연결이 안 됐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