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오너가 전 직원들에게 주식 90만주(1100억원 어치)를 무상으로 나눠줘 업계의 부러움이 샀던 한미약품이 위기를 맞았다. 악재성 정보를 뒤늦게 공시하고 신약 부작용에 따른 환자 사망 사실을 알고도 제품을 팔아왔다는 의혹이 일면서 주가는 물론이고 그동안 쌓아놓은 우호적인 이미지와 신뢰까지 무너지고 있다.
악재 늑장 공시에 신뢰 추락
4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악재 정보를 알고도 늦게 공시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쳐 비난을 사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30일 개장 후인 오전 9시29분께 독일 제약업체인 베링거인겔하임이 작년 7월 사들인 폐암치료 신약 '올리타정(올무티닙염산염일수화물)' 권리를 반환하기로 결정했다는 악재성 정보를 공시했다.
문제는 한미약품이 이 정보를 미리 알고도 하루 늦게 알렸다는 사실이다. 한미약품이 이 통보를 받은 것은 전날인 29일 오후 7시6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29일 오후 4시33분에 미국 제약업체 제넨텍과의 1조원대 기술 수출 계약에 성공했다는 호재성 정보를 공시했다. 하루도 안돼 호재성과 악재성 정보를 차례로 공개하면서 투자자들의 혼란은 물론이고 피해를 가져왔다.
제넨텍과의 기술 수출 계약 정보만 보고 30일 개장부터 30분간 한미약품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들은 20%가 넘는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한미약품 측은 고의성이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김재식 한미약품 부사장은 지난 2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시를 위한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지연됐을 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거래소·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 당국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당이익을 얻은 세력이 있는지 조사에 나섰다. 만약 내부자 거래 등 위법 사실이 드러날 경우 검찰 수사와 투자자 소송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폐암 신약 부작용 알고도 판매 논란
한미약품은 올리타정 임상 시험 도중 부작용으로 2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판매한 의혹까지 받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올리타정을 투약한 환자 731명 가운데 3명(0.4%)에게서 중증피부이상 반응인 스티븐스존슨증후군(SJS)과 독성표피괴사용해(TEN) 질환이 나타났다. 특히 올리타정이 허가되기 전인 지난 4월 독성표피괴사용해 증상으로 임상도중 사망자가 1명 발생했고, 6월에는 같은 증상으로 환자 1명이 입원했다 퇴원했다. 9월에도 스티븐스존슨증후군이 발생한 환자 1명이 사망했다.
식약처는 5월 3상 시험 자료 제출을 조건으로 임상 2상 단계 자료만으로 올리타정의 조건부 시판 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사망자가 나오자 지난달 30일 새로운 환자에게 처방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4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자문 등을 거쳐 의사의 전문적 판단 하에 환자의 동의를 받아 사용할 수 있는 제한적 사용을 허용했다. 말기 폐암환자에게 올리타정을 사용할 경우 유익성이 중증피부이상반응의 부작용 위험성보다 높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한미약품이 부작용을 늦게 보고 해서 조건부 시판 허가를 받아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폭락하는 주가에 뿔난 주주들
한미약품 사태로 가장 뿔난 사람들은 소액주주들이다. 한미약품이 국내 제약업계의 연구개발(R&D)를 주도한 업체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안고 있었는데 한 순간에 뒤통수 맞은 꼴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몇몇 한미약품 소액주주들은 온라인상에 카페를 개설하고 '한미약품·한미사이언스 주주모임'을 열었다. 주주모임 측은 "한미약품 사태와 관련해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며 "매번 소액투자자들이 당할 수밖에 없는 이 환경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적극적인 매수 의견을 낸 증권가에서도 일제히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한국투자증권은 목표주가를 기존 84만원에서 79만원으로 낮췄다. 한국투자증권 정보라 연구원은 "신약개발 중 임상 중단은 피할 수 없는 이벤트이고 글로벌 신약개발을 위한 성장통"이라면서도 "투자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공시 시점으로 당분간 주가는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동부증권도 기존 93만원에서 73만원, HMC투자증권은 기존 90만원에서 63만원, 신한금융투자는 기존 75만원에서 60만원 등으로 목표 주가를 대폭 낮춰 잡았다.
한미약품 주가는 지난달 30일 18.6%, 연휴 후인 4일 7.28% 급락해 2거래일 간 24%(14만9000원)나 빠졌다.
한미약품은 4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최근 회사 일로 주주 여러분께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려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금융당국의 조사가 있는 경우 임직원들이 성실히 임해 시장 오해를 불식시키고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