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4차전(11일)을 앞둔 이란 테헤란은 침울했다.
8일 오전(현지시간) 도착한 이란 테헤란은 무척 고요했다. 숙소로 이동하는 길과 한국 대표팀 훈련장으로 향하는 동안 테헤란 곳곳에서 검은색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또 검정색 바탕에 한 사람이 울고 있는 모습을 담은 광고판도 자주 눈에 띄었다. 지금 테헤란은 시아파 종교 지도자 추모 기간이다. 모하마드의 직계 후손인 종교 지도자 이맘 가족 일가 70여 명이 반대파에게 비참하게 처형된 날을 추모하는 날이다.
특히 한국과 이란의 4차전 이튿날인 12일은 '아슈라'라 불리는 추모의 날이다. 이날은 이란에서 가장 신성시 하는 날로 이란 당국은 11일과 12일을 공휴일로 정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예술 공연은 물론이고 스포츠 경기도 열리지 않는다. 이란축구협회는 경기 한 달 정도를 남겨 놓고 뒤늦게 경기 일정을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이란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최종예선 모든 일정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은 이란전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는 상관없는 날이기는 하지만 상대 국가의 추모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팀 선수들도 골을 넣었을 때 과도한 세리머니는 자제하도록 교육받았다. 한국이 이란을 자극한다면 폭력사태까지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이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아슈라는 이란에서 정말 중요한 날이다. 만약 한국이 이란에 승리를 한다면 과격한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조심해야 한다. 이란을 최대한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란은 폐쇄적인 나라로 알려졌지만 길에서 만난 국민은 외국인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축구가 중간에 끼면 완전히 달라졌다. 실제로 대표팀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이란의 비매너 축구가 이미 시작됐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현장에서 확인한 한국의 훈련장인 알아라트 스포츠 콤플렉스의 그라운드는 잔디가 아닌 잡초로 무성했다. 곳곳이 움푹 들어가 부상 우려도 있었다. 결국 한국은 자체적으로 좋은 훈련장을 물색했고 잔디 상태가 좋은 곳을 찾아내 9일부터 장소를 옮겼다.
황당한 일은 계속됐다. 이란축구협회는 자국 대표팀이 어디에서 훈련하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 측에서 이란에 훈련 장소와 시간을 몇 번이고 물어봤지만 이란 측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4차전이 열리는 아자디 스타디움은 '원정팀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한국은 이곳에 6번 방문해 2무4패라는 성적만 안고 돌아와야 했다. 10만 관중의 포효는 아시아 최강 한국 대표팀도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자디 스타디움이 최근 리모델링을 하면서 10만 좌석이 8만여 개로 줄어든 것이다. 종교 지도자 추모 기간이라 8만석을 다 채울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란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관전 편의를 위해 1년 전에 관중석을 개인석으로 바꿨다. 지금 수용인원은 8만 명이다. 4차전 표는 절반 가량 팔린 상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