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와 관계없이 모든 가을야구 참가 팀은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한다. WC부터 두 경기를 치렀지만 탄탄한 투수진이 험난한 일정을 이겨내는 원동력이다. 정규시즌 투고타저가 무색하게 LG의 강력한 투수진은 앞 시리즈에 선착해 있는 팀들도 긴장케 한다.
그 조연은 포수들이다. 신·구 안방마님, 정상호(34)와 유강남(24)은 번갈아 마스크를 쓰며 투수들을 돕고 있다. 두 포수의 나이 차는 딱 열 살이다. 양상문 LG 감독은 이번 포스트시즌을 '맞춤형 포수' 체제로 치르고 있다. 정상호는 류제국와 헨리 소사, 유강남은 데이비드 허프와 우규민과 호흡을 맞췄다. 정상호는 관록, 유강남은 패기를 불어넣고 있다. 타석에서도 알토란같은 활약을 했다. 정상호는 WC 2차전에서 결승점을 이끄는 선두 타자 안타를 쳤고, 유강남은 준플레이오프(PO) 3차전에서 결승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두 선수는 타석에서의 활약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LG 투수들과 리드에 대해 말할 때는 목소리가 커졌다. 눈도 반짝인다.
유강남은 왼손 허프와의 '찰떡 호흡'을 인정받고 있다. 경기 전날 밤잠을 설치며 허프의 투구를 분석한다. 유강남이 허프에 대해 "모든 포수들이 호흡을 맞추고 싶어하는 투수다"고 말한다. 워낙 컨트롤이 좋기 때문에 리드에 어려움이 적다는 평가. 포수는 경기 초반 투수의 공을 받으면서 미트에 느껴지는 감촉으로 당일 컨디션을 판단한다고 한다. 유강남은 "허프는 매 경기, 사인에서 벗어나는 공을 던질 때가 드물 만큼 안정감이 있는 투수"라고 했다.
허프는 빠른공과 체인지업 두 가지 구종에 의존하는 '투 피치 피처'다. 넥센 타자들은 준PO 3차전에서 그의 빠른 공을 대비하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특히 2구 연속 꽂히는 인사이드 직구는 감탄을 자아냈다. 유강남은 "모든 구종에 퀄리티가 좋은 편이기 때문에 특별히 안쪽 직구가 더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쳐도 파울이 되는 공 아닌가. 타자가 머릿속에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바깥쪽 체인지업도 효과적으로 통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과감한 몸쪽 승부는 바깥쪽 체인지업을 살렸다. 유강남이 허프의 장점을 살리는 리드를 했다.
유규민에 대해서는 "리드하는 즐거움을 주는 투수"라고 전했다. 유독 애착을 드러내는 투수이기도 하다. 우규민은 제구력에선 둘째 가라면 서러울 투수다. 올 시즌 성적은 지난해보다 좋지 않았다. 하지만 빠르지 않은 공으로도 타자를 제압하는 법을 알고 있다. 특히 릴리스포인트에 미묘한 차이를 줘 투구 궤적에 변화를 준다. 타자가 공략하기 어렵지만 공을 받는 포수도 마찬가지다.
처음 호흡을 맞추는 포수라면 더 어렵다. 하지만 유강남은 우규민과의 호흡을 위해서 그동안 노력했던 시간을 설명했다. "나는 캠프에서부터 많은 공을 받고,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이제는 투수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전했다.
정상호는 소사의 빠른 공의 위력 살리는 리드를 선호한다. 그는 LG 이적이 결정된 지난해 12월 공을 받아 보고 싶은 투수로 소사를 꼽았다. 타자로 상대했을 때 느낀 위력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 시즌 동안 호흡은 맞춘 그는 "예상한 그대로였다"고 했다. 그리고 기복이 있을 때도 강점 강화에 방점을 뒀다. 정상호는 "한국 무대에서 오랜 뛴 선수인 만큼 변화구 승부도 잘하는 투수지만 가급적 빠른 공 승부를 유도한다"고 전했다.
후반기 명실상부한 에이스다운 투구를 한 류제국에 대해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후반기엔 특히 커터가 좋았다. 슬라이더보다 빠른 공이 타자 앞에서 살짝 꺾이다 보니 배팅 포인트를 빗맞는다. 범타가 많아진다. 정상호는 류제국의 새 무기를 인정했다. "캠프나 전반기와 비교해서 확실히 완성도가 높아진 것 같다. 특히 우타자 몸쪽으로 들어가는 백도어성 공이 효과적이다. 이제는 자신이 생각한대로 던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포수는 투수의 역량을 끌어내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유강남은 "투수들이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면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정상호도 "한 경기, 투수의 긴 여정을 최대한 바른 길로 이끄는 게 포수다. 그래서 마누라나 어머니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투수가 부진하면 포수가 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더 노력한다"고 했다.
준PO 4차전을 앞두고 만난 두 포수는 자신들이 조명받는 사실에 민망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투수들이 경기 후 자신의 이름을 언급해주면 "정말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두 포수는 조연을 자청했다. 유강남은 "포수는 주연이 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상호는 "아무리 멋진 볼배합을 해도 투수가 잘 던져줄 때 웃을 수 있다. 그래서 포수는 주연을 돕는 조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투수는 포수가 없이는 타자를 향해 공을 던질 수 없다. 조연 앞에 '특급' 정도의 수식어는 붙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