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짱짱한 실력을 자랑했던 '센 언니'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제 인생 2막을 열겠다"며 쿨한 작별 인사를 남겼다.
2016~2017 삼성생명 여자프로농구 홈 개막전은 주요 선수들의 은퇴식과 함께 시작됐다. KB스타즈는 지난달 30일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KDB생명과 홈 개막전에서 변연하(36)의 은퇴식을 열었다. 변연하는 지난 4월 은퇴를 선언하기 전까지 8시즌 동안 한 팀에서 뛴 한국 여자 농구 최고의 슈터였다. 최다 3점슛 신기록(1014개)의 주인공인 그는 승부처마다 회심의 외곽슛을 꽂아 넣으며 '변코비'라는 애칭을 얻었다.
변연하는 이날 헐렁한 유니폼 대신 날렵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화장한 채 농구 코트에 들어섰다. 그는 "행복하게 선수 생활을 했기에 행복하게 물러난다.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후배와 동료들에게 돌려주겠다"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모두가 인정하는 큰 별이었다.
안덕수 KB스타즈 감독은 "정말 좋은 선수였고, 팀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된 굵직한 선수였다. 팀 사정으로 떠나보내지만 변연하의 이탈로 팀 전력에 영향을 받는 건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정은순 KBS N SPORTS 해설위원은 "스케일이 큰 선수였다. 실력 있는 농구계 스타플레이어로 자부심이 넘쳤고, 경기마다 해결사 역할을 했던 선수"라고 되짚었다.
이제부터는 지도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변연하는 지난 4월 은퇴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어학 공부에 매진했다. 이어 9월에는 스탠퍼드대학교 농구 지도자과정에 입학해 수업을 듣고 있다. 앞으로도 세계 농구를 이끌어 가는 미국 현지에 남아 기초가 단단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공부할 예정이다. 변연하는 "지도자 연수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이제 적응하는 과정에 있고, 시작 단계다. 열심히 해서 잘 마치고 돌아오겠다"고 야무지게 말했다.
사진=한국여자농구연맹
삼성생명의 든든한 '맏언니' 이미선(37)은 변연하가 작별 인사하기 하루 전인 10월 29일 은퇴식을 가졌다.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삼성생명과 우리은행의 개막전에 앞서 등장한 그는 단정한 검은색 원피스에 맨발이었다. 이미선은 "코트에서는 하이힐을 신지 않는 것이 예의"라며 수줍게 웃었다. 자신의 농구 인생과 똑 닮은 말이었다. 이미선은 1998년 삼성생명에 입단한 뒤 19시즌 동안 포인트가드로 활약한 '원클럽우먼'이었다. 플레이오프만 93차례를 치렀고, 리그 우승컵은 다섯 번이나 들어 올렸다. 1107개의 스틸은 역대 1위에 해당한다.
정 해설위원은 "남들이 하지 않는 궂은일을 누구보다 착실하게 하는 선수였다. 그만큼 성실하고 묵묵하게 자기 몫을 했다"고 말했다. 후배들은 맨발인 맏언니에게 운동화를 신겨 주며 눈물을 쏟았다. 삼성생명은 이미선의 등번호인 5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체육관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걸고 영구결번으로 묶어 예우했다. 이미선은 앞으로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학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을 계획이다.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은 밖에서도 빛나게 마련이다. 변연하와 이미선도 마찬가지다. 정 해설위원은 "일생 농구만 하다 코트 밖으로 나갈 때 느끼는 두려움은 프로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감정일 것"이라며 "변연하와 이미선은 여자 농구계 톱 레벨의 선수였다.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조만간 자신의 길을 찾아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