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은 올해 홈구장을 고척스카이돔으로 옮겼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돔구장을 최초로 쓰는 행운을 잡았다. 그 덕을 톡톡히 봤다.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척돔은 야구 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도 선수들을 방해하지 못했다. 에어컨디셔너로 열기를 식혔다. 게다가 넥센은 올 시즌 홈에서 경기가 단 한 번도 취소되지 않은 유일한 팀이었다. 비 때문에 홈경기를 못 하는 일은 넥센 사전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도 한결 쉬웠다.
목동구장을 주름잡던 거포들을 메이저리그로 보낸 넥센이다. 홈런이 덜 나오는 돔구장의 환경도 넥센에는 유리한 변화였다. 투수들의 부담감이 줄었고, 발 빠른 타자들의 장점을 살렸다. 그 결과 넥센은 올해 홈 72경기에서 44승28패로 승률 0.611를 기록했다. 원정 경기에선 33승1무38패로 5할 승률을 넘지 못했다. 정규 시즌 승률 0.538를 훨씬 웃도는 홈 승률을 앞세워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유격수 김하성의 성장과 20-20
유격수 김하성은 '될 성부른 떡잎'이었다. 풀타임 첫해인 지난해 신인왕과 유격수 골든글러브 후보에 동시에 올랐다. 홈런 19개에 도루 22개를 기록하면서 20홈런-20도루 클럽 문턱에서 미끄러진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올해는 지난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땀을 흘렸다. 올해 144경기에 모두 출장해 타율 0.281(526타수 148안타)·84타점을 올렸다. 홈런 20개와 도루 28개로 꿈에 그리던 20-20 클럽 가입 목표도 이뤘다.
김하성은 강정호(피츠버그)가 미국으로 떠난 뒤 넥센이 2년간 공들여 키운 후계자다. 점점 더 물오른 기량으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아직 어린 선수라 미래도 창창하다. 스스로도 좀 더 좋은 선수가 되고 싶은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비록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서는 제외됐지만, 김인식 WBC 대표팀 감독이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카드다. 김하성은 그 정도로 많이 성장했다.
부족했던 뒷심
넥센 선수단에는 올 시즌 처음으로 풀타임을 치르는 선수들이 유독 많았다. 투수진부터 야수진까지 골고루 그랬다. 프로야구는 지난해부터 144경기 체제로 바뀌었다. 이전에 풀타임을 치러 본 선수들조차 체력 관리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기 수다. 당연히 올해 처음으로 한 시즌을 통째로 뛴 선수들에게는 더 힘들기 마련이다. 실제로 시즌 후반 체력 저하를 토로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시즌 초반보다 후반 성적이 현저히 떨어졌다.
결국 팀 전체의 뒷심 부족으로 이어졌다. 넥센은 9월 한 달간 9승12패로 10개 구단 가운데 8위에 머물렀다. 10월에도 2승3패로 5할을 넘지 못했다. 2위 NC를 추격하지 못한 채 3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 여파는 결국 포스트시즌까지 이어졌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정규 시즌 4위 LG를 만나 시리즈 전적 1승3패로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성과가 많았던 한 시즌의 마무리가 다소 아쉬웠다.
◇ 이럴 줄 몰랐다
정규 시즌 3위
넥센의 정규 시즌 순위 자체가 놀라움이었다. 개막 전 많은 야구전문가들은 넥센을 유력한 최하위 후보로 꼽았다. 마땅히 보강된 선수는 없는데 누수 전력이 어마어마했다. 50홈런 타자 박병호가 메이저리그로 떠났고, 국가대표급 필승조 한현희와 조상우는 부상으로 이탈했다. 내부 FA 단속도 하지 못했다. 마무리 투수 손승락은 롯데로, 중심타자이자 주전 외야수 유한준은 kt로 이적했다.
그러나 그동안 주전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다른 선수들의 패기와 열정은 기대와 전망을 뛰어넘고도 남았다. 투타에서 나타난 새 얼굴들이 투타 각 요소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웠다. 만년 유망주들이 데뷔 후 최고의 실력을 발휘했다. 넥센은 스타 선수들이 많았던 지난해(4위)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2016년을 마쳤다. 최하위 후보의 기분 좋은 반란이었다.
신인왕·세이브왕·홀드왕이 나왔다
선발 신재영·박주현, 불펜 이보근·김상수, 마무리 김세현. 넥센 마운드는 올 시즌을 앞두고 아예 '새판'을 짜야 했다. 신재영과 박주현은 1군 등판 기록이 없는 신인이었고, 이보근과 김상수, 김세현은 늘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한 번도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짊어지고 시즌을 시작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신재영과 박주현은 시즌 초반 기대를 뛰어넘는 안정적인 투구로 선발진에 안착했다. 마땅한 국내 선발투수가 없어 힘겨워했던 팀의 고민을 덜어 줬다. 김세현과 이보근, 김상수도 자리를 비운 후배 투수들 이상으로 위력적이었다. 팀 마운드의 안정화에 큰 역할을 했다. 시즌 초반의 의문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넥센은 2012년 서건창에 이어 2호 신인왕을 배출했다. 신재영이 10년 만에 신인 15승을 올리면서 왕관을 썼다. 2009년 이현승 이후 팀 첫 국내 선수 10승 기록이기도 했다. 김세현과 이보근도 각각 세이브왕과 홀드왕에 올랐다. 데뷔 후 첫 개인 타이틀을 손에 넣고 올 시즌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장정석 신임 감독 선임
올 시즌 지휘봉을 잡았던 염경엽 감독은 준플레이오프 4차전 패배로 시즌을 마감한 뒤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시즌 중반부터 계속된 구단과 감독의 불화설이 사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염 감독과 껄끄럽게 이별한 넥센은 다음 적임자를 찾았고, 그 선택은 운영팀장 장정석이었다. 1973년생인 장 신임 감독은 현역 사령탑 가운데 최연소다. 프로야구 지도자 경력도 전혀 없다. 은퇴 후 현대와 넥센에서 프런트로만 일했다. 10개 구단 가운데 오로지 넥센만이 택할 수 있는 인사였다는 평가다. 자립형 야구기업인 구단의 정체성을 그라운드에서도 확립할 수 있는 인물로 장 감독이 낙점됐다.
장 감독의 선임은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프로야구 지도자 경험이 없는 프런트 출신 인사가 감독으로 전격 취임한 것을 놓고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긍정적인 기대와 부정적인 반응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동시에 코치진에도 파격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고 나이도 젊은 코치들이 주요 보직을 맡게 됐다. 박승민 코치와 강병식 코치가 각각 투수와 타격 메인 코치로 승격됐고, 프로에서는 선수로 뛴 적도 없는 김동우 전력분석팀장이 배터리코치로 선임됐다. 육성군에서 올라온 오규택 코치와 조재영 코치가 작전·주루 코치를 나눠 맡았다. 공개적으로 '프런트 야구'를 선언한 넥센은 2017년 어떤 야구를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