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리던 날 이적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위로와 공감, 그리고 분노와 희망을 담은 노래들이 130분을 꽉 채웠다. 잠실에서 시작한 노래는 광화문까지 마음을 공유했다.
이적은 26일 전국투어 콘서트 '울려퍼지다' 첫 공연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었다. 3집 수록곡 '노래'를 선곡한 이적은 독약 같은 세상 속에서 노래가 주는 힘을 말하며 '울려퍼지다'의 시작을 알렸다.
데뷔 22년차 이적은 두 시간 남짓한 공연 동안 과거·현재·미래를 담았다. 솔로로서는 물론, 패닉·긱스·카니발·처진달팽이까지 그동안의 히트곡을 총망라한 21곡을 노래했다. '같이 걸을까' 'Rain' '거위의 꿈' '고독의 의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다행이다' '로시난테' '랄랄라' '압구정날라리' '하늘을 달리다', 앵콜곡 '걱정말아요 그대' '왼손잡이' 등을 스토리별로 묶어 불렀다.
감미로운 피아노, 잔잔한 기타선율, 펑키한 리듬의 댄스곡까지 장르마다 이적의 목소리는 변주했다. '기다리다'를 부를 땐 이적의 목소리와 이적이 연주한 기타사운드가 공연장 가득 울렸다. 또 '거위의 꿈'에선 길구봉구의 이봉구와 호흡을 맞췄고 '로시난테'에선 메이트 임헌일과 피아니스트 남메아리 등 후배들과 조화를 이뤘다. 화려한 조명과 세련된 영상이 어우러져 대규모 공연장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특히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와 'UFO'를 부를 땐 슬픔과 분노가 뒤섞였다. 이적은 "공연 준비하면서도 가사가 조금 다르게 들렸던 노래들이다. 마음가는대로 느껴주길 바란다"며 열창했다. 스크린에는 세월호 참사와 광화문 촛불집회를 연상케하는 영상이 펼쳐졌다. 고래가 헤엄치는 바다, 그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들 그리고 한가운데로 다시 모이는 사람들, 결국엔 반짝이는 불빛. 같은 시각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과 마음만은 함께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적은 "요즘따라 'UFO'가 분노에 대한 노래였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루빨리 분노를 잊을 수 있는 시기가 오길 바란다. 광화문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 여기 온 관객들도 어떤 미안함 혹은 부채의식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편한 마음은 아닐 것 같다.) 우리도 여기서 무언가 같은 마음을 공유했음을…"이라고 전했다. 올 2월까지 66회 전체 매진을 기록한 소극장 콘서트로 팬들을 만났던 이적은 대규모 공연장에서도 빛났다. 3층까지 꽉 들어찬 관객들은 그의 목소리와 몸짓 하나 하나에 반응했다. 떼창과 점프는 기본, 휴대폰 플래시로 불꽃을 만들고 이적이 물을 마시는 순간에도 함성과 환호는 그칠 줄 몰랐다. 이적은 "물의 정령들이 왔나보다. 다음 공연은 수영장에서 해야겠다" "(플래시가 군데군데 비어있자) 무슨 글자인 줄 알았다. 배터리가 없어 못켰나보다"는 유머로 웃음을 안겼다.
그러면서 "무슨 복을 타고 났는지 모르겠다. 노래를 찾아와 들어주시고 함께 웃고 즐겨주시고 정말 감사하다"고 재차 인사했다. "지금 공연은 단순한 두 시간이 아니다. 나의 20여 년 음악인생을 보러 오시는 동시에, 현재 내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하면서 앞으로의 미래를 점치는 시간이다. 여러분들도 나의 노래를 통해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다"며 노래로 삶의 일부를 관객들과 나눈다고도 했다. 또 내년에 나올 새 앨범 소식을 전하며 앞으로도 전국에 있는 팬들과 가까이 자주 만나겠노라고 다짐했다.
한편 이적의 전국투어 콘서트 '울려퍼지다'는 12월17일 광주, 24일 대구, 31일 부산 등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