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감독은 2010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 역대 최약체라 평가 받는 성남 일화를 이끌고 정상에 섰다. '난놈' 역사의 시작이었다.
2010년 신 감독의 성남은 선수가 없어 겨우 버티는 수준이었다. 과거 국가대표도 베스트 11에 들 수 없다는 최강의 멤버를 자랑하던 그런 성남이 아니었다. 이런 팀을 이끌고 아시아 정상에 섰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ACL 우승컵을 들어 올린 뒤 신 감독은 스스로를 '난놈'이라고 표현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난놈'의 전진은 멈추지 않았다. 성남을 떠난 뒤 국가대표팀 코치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국 축구 젊은 지도자 흐름의 중심에 섰다. 대표팀 코치로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난놈'의 역사가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신 감독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 첫 번째 도전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인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 이제 곧 시작된다.
◇ 547일 여정의 끝, 리우 올림픽 8강
2015년 2월 5일. 대한축구협회는 신태용 국가대표팀 코치를 2016 리우 올림픽 감독으로 선임했다. 급성백혈병으로 감독직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었던 고 이광종 감독을 대신해 신 감독을 선택한 것이다.
선수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남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게다가 이 올림픽대표팀은 '골짜기 세대(스타 선수들을 배출한 세대 가운데 낀 세대)'라 불리며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신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과감히 올림픽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신태용의 팀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권창훈(22·수원 삼성)·문창진(23·포항 스틸러스) 등으로 구성된 골 넣는 미드필더 라인을 완성시켰다. 또 황희찬(20·잘츠부르크)이라는 깜짝 스타도 배출 시켰다.
리우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으로 치러진 AFC U-23 챔피언십 결승에서 일본에 2-3 역전패를 당하며 큰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신 감독은 쓰러지지 않았다. 독기를 품고 한 발 더 나아갔다. 와일드카드(23세 이상 선수)로 손흥민(24·토트넘)·석현준(25·트라브존스포르)·장현수(25·광저우 푸리)를 발탁하며 올림픽대표팀을 완성시켰다.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뒤 리우 올림픽 C조 1차전 피지와 경기가 열린 8월 4일까지 걸린 시간은 547일이다.
이 짧은 준비 기간 동안의 노력이 리우 올림픽 8강이라는 결실을 만들어냈다. 피지를 8-0으로 대파한 한국은 2차전 독일과 3-3 무승부를 거뒀고, 3차전 멕시코를 1-0으로 넘었다.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조 1위로 8강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렸다. 비록 8강에서 온두라스의 수비 축구에 밀려 0-1로 무릎을 꿇었지만 급하게 팀을 맡아 이 정도까지 올려놓은 과정은 박수를 받았다.
올림픽 8강은 '난놈'이 써낸 또 하나의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 180일의 기적을 기다린다
2016년 11월 22일. 대한축구협회는 신태용 국가대표팀 코치를 U-19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안익수(51) 감독을 대신해 신 감독을 선택한 것이다.
리우 올림픽 감독 선임 때와 상황이 비슷해 보인다. 소방수 역할이다. 내년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U-20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를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신 감독에게 맡긴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다르다. 올림픽 감독 당시에는 대표팀 코치를 겸임했다. 올림픽이 잘못된다고 해도 돌아갈 곳이 있었다. 이번에는 대표팀 코치직을 내려놓고 왔다. U-20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갈 곳이 없는 처지다. 또 신 감독은 청소년대표팀을 지도한 경험이 없다.
가장 큰 차이는 준비 기간이다. 올림픽은 547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이것도 짧다고 했다. 이번에는 더 짧다. 신 감독이 U-19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뒤 U-20 월드컵 개막전이 열리는 2017년 5월 20일까지 남아 있는 시간은 180일이다. 올림픽 준비기간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신 감독은 다시 도전을 선택했다.
신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올림픽대표팀을 맡을 때도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성적과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며 "당연히 팀 성적이 안 좋으면 몸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걸 두려워하면 감독으로서 더 크게 올라가지 못한다. 리스크가 클수록 더 크게 성장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180일 동안 할 일은 많다. 일단 선수들을 파악해야 한다. 국내 선수와 함께 바르셀로나 트리오 이승우(18)-백승호(19)-장결희(18)의 능력을 어떻게 끌어낼지도 고민거리다. 국내 및 해외 전지훈련을 준비해야 하고 내년 3월 15일 열리는 U-20 월드컵 조추첨이 끝나면 상대팀 분석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수원 JS컵 등을 치른 뒤 내년 4월에는 최종엔트리를 선별해야 한다.
시작은 제주도다. 신태용팀은 오는 11일 공식적인 일정을 시작한다. 제주도 서귀포에서의 전지훈련이다. 약 2주간 23일까지 진행되는 이 훈련에 무려 34명을 소집했다. 역대 청소년대표팀 최대 규모다. "아는 선수가 많지 않아 답답하다"는 신 감독의 말처럼 짧은 시간 내 최대한 많은 자원을 점검해 보겠다는 강한 의지다.
이제 '180일의 기적'을 향한 첫 걸음을 뗀다. '난놈'의 역사도 새로운 영광을 기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