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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551. 촛불집회도 한류다.
북한 주민들은 드러내놓고 볼 수는 없어도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 얼마 전에는 드라마 ‘정도전’의 인기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혼탁한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하면서 민본주의를 강조했던 개국공신 정도전의 이야기는 북한 주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얼마 전 중국은 한한령을 내렸다. 한국 드라마·영화 상영 금지와 한국 가수 공연 제한, 그리고 홈쇼핑에서 한국 상품 방송 금지하는 내용의 한한령은 중국이 사드배치에 따른 보복성 조치이다. 시진핑 주석은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의 문화예술가를 상대로 "중화 문화에 자신감을 갖고 창조적 작품을 만들라"고 촉구했다. 중국은 그동안 한류가 중국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시시각각 경계하고 있었다. 즉 한류를 금지시킬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하필 촛불집회를 시작한 즈음에 강화된 것일까.
대통령의 국정농단은 세계적으로 망신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추락한 지도자에게 하야와 퇴진을 촉구하는 수백만 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보여준 시위문화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광화문 집회에서 그 누구도 폭력적으로 시위하지 않았으며, 경찰에 연행된 사람도 없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퍼포먼스와 공연, 촛불 파도타기와 소등과 점등, 청와대를 둘러싼 인간 띠 잇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청와대를 향해 정권퇴진·하야를 촉구했다.
대한민국의 촛불집회를 보고 가장 우려의 눈초리로 지켜 볼 국가는 바로 북한과 중국이다. 최근 북한은 우리나라의 촛불집회를 상세히 보도하며 김정은 체제의 우월함을 선전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보도를 본 북한 주민들은 지도자의 하야와 퇴진을 자유롭게, 마음껏 외치며 행진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보며 ‘남한은 참 자유롭구나’라며 부러워했을 것이다.
중국도 입장이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중국인들은 사태의 내막을 알고 비웃기도 하지만 국민의 대규모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경이를 표했다. 중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국을 흔드는 사람은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혀 조용히 사라지는 나라가 중국이다. 제2의 천안문 사태가 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채찍과 당근을 쓰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한국의 촛불집회가 달가울 리 없다.
촛불집회야말로 진정한 한류이다. 비록 대통령을 잘못 선택한 국민의 잘못도 없지 않지만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국민의 노력 또한 대단하지 않은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청와대를 향해 시위하는 모습은 가히 아시아의 시민혁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지도자의 퇴진, 하야를 외치는 232만 명의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 수 있는 나라가 아시아에 또 있을까.
북한 주민들이 좋아하는 정도전이 조선을 건국하며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경국대전에는 승지벼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승지는 권력에 야심을 갖고 있는 자는 시켜서는 안 된다. 권력에 야심이 있는 사람은 바른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승지는 선비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무려 560여 년 전 책이지만 오늘날 대통령이 귀담아 들어야 하는 말이다.
꼼수를 쓰는 대통령은 부끄럽지만 촛불은 든 국민은 자랑스럽다. 그동안 성난 국민들이 일궈낸 비폭력·선진 시위문화는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됐고,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언제까지 촛불을 들게 할 것인가. 이제는 촛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를 알 때도 된 것 같은데 말이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