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개막 전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해리 케인(23·토트넘)과 2위 세르히오 아구에로(28·맨체스터 시티)가 버티는 가운데 지난 시즌 프랑스 리그앙 득점 1위를 차지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35)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 가세했다. 여기에 2009~2010시즌 벨기에 주필러리그 최고 골잡이에 올랐던 로멜루 루카쿠(23·에버턴)까지 급성장하면서 프리미어리그는 득점왕 출신들의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반환점을 앞둔 현재 득점왕 경쟁은 안갯속과 같은 상황이다. 게다가 득점 1위(13골) 선수는 예상 밖의 인물인 디에고 코스타(28·첼시)다. 지난 시즌 부상을 당했고 당시 사령탑 조세 무리뉴(현 맨유 감독) 감독과 불화를 겪은 코스타는 28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넣는 데 그쳤다. 때문에 올 시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올 시즌 안토니오 콘테(47) 감독을 만나 해결사로 변신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개막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코스타는 이후 경기에서도 쉼 없이 골을 쏟아 냈다. 무엇보다 꾸준했다. 그는 10월 31일 사우샘프턴전을 시작으로 8경기에서 6골을 터뜨렸다. 올 시즌 첼시가 치른 17경기에 모두 출전한 그는 무려 12경기에서 골맛을 보며 첼시의 11연승을 이끌었다. 첼시(승점 43)는 2위 리버풀(승점 37)에 승점 6점 차로 앞선 리그 단독 선두다.
그동안 코스타는 다혈질 성격에 발목을 잡혔다. 지난 시즌에도 상대팀 선수들과 신경전을 벌이거나 코칭스태프와 충돌해 페이스를 잃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콘테 감독이 첼시를 맡은 뒤부터 성격이 180도 달라졌다. 올 시즌 그는 상대와 신경전에서 웬만하면 다 웃음으로 맞받아칠 만큼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스타는 "콘테 감독의 '패밀리 리더십'이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콘테는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가족처럼 여긴다"면서 "바쁜 시즌 중에도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해 이들과 식사를 하며 한발 먼저 다가서려고 한다"고 전했다. 코스타 역시 콘테 감독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자신감과 평정심을 얻었을 거란 분석이다.
코스타를 바짝 추격 중인 '칠레 특급' 알렉시스 산체스(28·아스널)도 눈에 띈다. 17경기에 나와 12골을 터뜨린 산체스는 득점 2위를 기록했다. 산체스는 포지션 변경에 성공했다. 올 시즌 제로톱 전술을 쓰는 아스널에서 그는 최전방 공격수로 변신했다. 풍부한 활동량이 최대 무기인 그는 그동안 최전방 공격수에게 득점 찬스를 내주는 연계 플레이를 많이 했다.
그러나 2선에서 직접 득점이 가능해진 올 시즌엔 도움을 주는 것뿐 아니라 직접 골사냥에 나섰다. 산체스는 도움 부문도 2위(6개)에 올라 있다. 만능 플레이어 산체스의 몸값은 하늘을 찌른다. 내년 6월 아스널과 계약이 끝나는 산체스는 현재 주급 30만 파운드(약 4억5000만원)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0만 파운드는 구단 내 최고 몸값이다.
큰 기대를 모으며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이브라히모비치는 16경기서 11골을 넣어 3위를 달리고 있다. 195cm의 우월한 신장을 갖춘 그는 2015~2016시즌 파리 생제르맹(프랑스)에서 뛰며 38골을 터뜨렸다. 38골은 2위 알렉상드르 라카제트(25·리옹)가 터뜨린 21골의 2배 가까운 기록이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는 달랐다. 맨유 초기에는 프랑스서 보였던 폭발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그는 개막 뒤 4경기에서 4골을 넣었지만 이후 6경기에선 무득점에 그쳤다. 때문에 그는 최근까지만 해도 한물갔다는 비난을 받았다. 스트라이커가 부진하자 소속팀 맨유는 추락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이브라히모비치는 자신감이 넘쳤다.
평소 자신감의 대명사다운 모습이었다. 파리 생제르맹 시절에 가진 인터뷰는 이브라히모비치의 당당한 면모를 보여 준 일화 중 하나로 유명하다. 한 기자가 결정적 찬스에서 동료에게 패스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당신이 나보다 축구를 더 잘 알기라도 한다는 말인가?"라며 두 눈을 부릅떠 기자의 기를 죽인 바 있다. 또 이번 맨유 이적을 앞두고도 소속팀 공식 발표에 앞서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적 사실을 먼저 알리는 기행을 펼쳤다.
그가 즐겨 쓰는 3인칭 화법 '나는 즐라탄이다(I am Zlatan)'는 자신의 SNS 아이디와 자서전 제목으로 사용할 만큼 유명하다. 그는 이번에도 기가 죽기는커녕 동료들에게 "투지를 더 불태우자"고 독려했다. 이브라히모비치의 자신감은 그라운드 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개막 뒤 10경기에서 4골에 그쳤던 그는 이후 7경기에서 7골을 몰아쳤다.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의 전설적인 골잡이 출신 앨런 시어러는 영국 일간지 더선과 인터뷰에서 "이브라히모비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빠른 득점 페이스를 보이진 않고 있다"면서도 "최근 상승세는 충분히 강한 인상을 줬다. 그는 올 시즌 코스타, 산체스, 케인과의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