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축구에 비해 덜 국제적인 스포츠다. 국가별 실력 차가 크다. 그래서 출범 당시부터 출전 선수는 부모나 조부모 국적의 대표팀 등록도 가능하게 했다. 2006년 대회에선 메이저리그 수퍼스타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부모님의 나라인 도미니카공화국 대표를 고민하다 결국 미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대회에 나섰다. 출전 규정은 대회의 가장 큰 변수다. 본선 진출 32개국 중 '약체'가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다. 자국 내 프로리그가 활성화되지 않은 국가들도 외부 전력 상승 요인이 뚜렷하다.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는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랭킹에서 10위다. 유럽 국가 중에서 순위가 가장 높다. 네덜란드와 함께 유럽에서 비교적 야구가 활성화된 국가다. 하지만 WBC에서 전력의 근원은 메이저리그다. 이탈리아는 2013년 WBC에서 D조 2위로 2라운드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난적' 캐나다와 멕시코를 탈락으로 내몰았다. 당시 이탈리아는 타선에서 닉 푼토, 크리스 데노피아, 알렉스 리디, 앤서니 리조 등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타자들이 대거 합류했다. 약점으로 지적됐던 포수도 빅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드류 부테라가 포함돼 힘을 보탰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메이저리거는 역사상 7명 밖에 없다. 하지만 부모와 조부모의 나라 유니폼을 입고 꽤 많은 빅리거가 WBC에 나섰다. 예상을 벗어난 전력 상승이었다. 이탈리아는 이번 WBC에선 프랭크 카탈라노토가 타격코치를 맡는다. 카탈라노토는 메이저리그 14년 통산 타율 0.291, 84홈런을 기록한 교타자. 여기에 뉴욕 메츠 유망주 브랜든 니모와 마이클 콘포토의 합류가 점쳐지고 있다.
한국 대표팀과 1라운드에 맞대결하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WBSC 랭킹이 41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번 대회 최대 복병으로 손꼽힌다. 이탈리아보다 더 견고한 '메이저리그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2013년 대회 때 이스라엘은 메이저리그 통산 328홈런을 기록한 숀 그린을 플레잉코치로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유대인 혈통은 이스라엘 대표팀 승선이 가능하고, 메이저리그에서 유대인 선수 역사는 오래됐다. 선수 수급 풀 자체가 크다.
미국 현지 언론에 거론되고 있는 선수 면면은 커리어가 화려하다. 이미 3회 대회 출장 경험이 있는 작 피더슨을 비롯해 외야수 라이언 브론, 내야수 폴 골드슈미트의 대표팀 승선이 점쳐지고 있다. 한 시즌 타율 3할 이상, 20홈런을 때려 낼 수 있는 빅리거들이 즐비하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의 WBC 본선이 확정된 후 "추가적으로 유대인 메이저리거가 로스터에 합류할 수 있다. 브론이나 킨슬러 등의 출장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네덜란드(WBSC 랭킹 9위)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대표팀과 같은 조인 네덜란드는 예비엔트리에서 내야수 디디 그레고리우스를 비롯해 켄리 젠슨, 젠더 보가츠, 주릭슨 프로파, 조나단 스쿱, 안드렐톤 시몬스 등 현역 메이저리거들을 대거 포함시켰다. 여기에 삼성에서 뛴 경험이 있는 지한파 투수 릭 밴덴헐크도 포함됐다. 투타 짜임새가 단단하다. WBC 출전 규정을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국가라는 평가다.
지난 대회에선 1라운드에서 한국을 꺾었고, 최종 4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2013년 대표팀 28명 중 현역 메이저리거는 세 명이었다. 이번엔 더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