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의 대표적인 '명가'인 삼성. 그러나 지난해는 창단 이래 최악이었다. 그라운드 안에선 눈부신 위업을 쌓았다. 눈을 야구장 밖으로 돌렸다. 제일기획이 최대 주주가 되며, 프로야구단의 '산업적' 가치도 끌어올리려 했다. 2011~2015년 연속 정규 시즌에서 보여 준 강한 전력은 변화를 도모할 자산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대는 어긋났다. 주력 선수의 이적 공백을 메우지 못했고, 외국인 선수들은 집단으로 부진했다. 오랜 포스트시즌 출전으로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선수단엔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 결과 정규 시즌 9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시즌 뒤엔 투타의 핵심인 4번 타자 최형우(KIA)와 선발투수 차우찬(LG)을 다른 팀에 빼앗겼다. 때문에 FA로 영입한 사이드암 투수 우규민에 기대가 쏠린다. 삼성은 그에게 65억원(4년)을 투자했다. 지난해 부상 여파로 6승11패 평균자책점 4.91에 그쳤다. 하지만 이전 3시즌(2013~2015년)엔 연속으로 두 자릿수 승 수를 올렸고, 145이닝 이상 던졌다. 기민하게 영입전에 뛰어들었고 선수의 마음을 얻었다.
차우찬이 우규민의 전 소속팀과 계약하며 보상선수를 주고받았다. 2 대 2 트레이드 모양새가 됐다. 올해 가장 화제를 모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기는 삼성-LG전이다. 두 투수의 행보는 항상 같이 회자될 것이다. 새 도전을 앞둔 우규민을 만났다. LG 이적 배경과 새 팀에서의 목표, 차우찬과의 끊어 낼 수 없는 인연에 대해 들었다.
◇ 홈런 공장 라팍? 마운드와 홈 플레이트 거리는 같다
- 삼성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진솔하게 들리지 않을 순 있다. 하지만 14년 동안 뛴 LG에 남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신인 시절부터 응원해 준 팬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계약 조건 차이를 언급하는 건 조심스럽다. 삼성이 내 가치를 인정해 줬다. 그래서 마음을 열었다. FA 시장이 개막한 뒤 가장 먼저 연락이 왔다. 내가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 걸 느끼게 해 줬다."
- 올 시즌 부진이 FA 계약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내가 못한 탓 아닌가. LG에서는 그런 점을 고려한 것 같다. 하지만 삼성은 그동안 쌓은 커리어를 존중했다. 불펜과 선발을 모두 경험한 이력도 높이 평가해 줬다."
-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신분 조회가 있었다. 해외 진출 도전 욕심은 없었나. "에이전트가 메이저리그의 한 구단이 내게 관심이 있다고 귀띔해 줬다. 그런데 정작 신분 조회 요청은 다른 구단이 했다고 들었다. '최소 두 팀이 관심이 있었네'라는 생각에 뿌듯했다. 나의 필요성을 느껴 영입하려 했을 것이다. 보직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계약 조건이 맞지 않았다."
- 처음으로 구단을 옮겼다. 적응도 과제다. "보직에 상관없이 소통을 많이 해야 한다. 후배 심창민이 있어 힘이 된다. 야구를 향한 열정이 정말 큰 친구다.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나를 '스승님'이라고 부른다. 같은 사이드암 투수다. 제구력 향상을 위해 내게 조언을 구했고, 알고 있는 걸 모두 알려 줬다. 경기 전 훈련할 때 모습을 보니 (내가 조언한) 그대로 하고 있더라. 뿌듯했다. 다른 투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겠다. LG에서 한솥밥을 먹은 정현욱 선배가 삼성 코치로 부임했다.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이제 이지영과 배터리를 이룬다. "같은 시기에 군 복무를 했다. 나는 경찰청, 이지영은 상무였다. 직접 호흡을 맞추진 않았지만 꾸준히 봐 온 선수다. 투수 리드 스타일도 잘 안다고 자부한다. 원래 포수를 가리진 않는다. 좋은 배터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윤성환과 함께 '제구력 듀오'도 기대된다. "제구력에는 자신을 향한 믿음과 배짱이 필요하다. 윤성환 선배는 모두 갖췄다. 빠르지 않은 공으로도 리그 정상급 투수가 될 수 있던 이유다. 이전부터 제구력이 가장 좋은 투수로 꼽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그저 '내 로케이션이 있는 투수' 정도다. 던지는 유형이 달라도 많은 것을 배우고 공유할 수 있다."
- 피홈런이 매년 늘었다. 새 홈구장은 잠실에 비해 홈런이 많이 나오는 구장이다. "야구장 크기를 의식한 적은 없다. 목동구장에서도 3년(2013~2015년) 동안 3점대 평균자책점(3.12)을 기록했다. 구장이 작거나 홈런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마운드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가 다른 건 아니다. 새 환경이기 때문에 오히려 집중력은 더 높아질 수 있다. 관중석이 낮은 것도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난 텅 빈 구장보다 꽉 찬 구장이 더 좋다." - 지난해 피홈런이 많아진 이유를 분석한다면. "볼넷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나는 '볼넷보다 안타를 맞는 게 낫다'는 속설에 동의한다. 야수와 투수도 호흡이 중요하다. 투수가 볼질을 하면 뒤에서 지키는 야수들의 사기가 꺾인다. 지난해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중 최소 볼넷(13개)을 기록했다. 이 기록을 상당히 의식한 게 맞다. 그래서 몰린 카운트에서 존 안으로 던진 공이 홈런이나 적시타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 상황에 맞는 투구를 할 생각이다. 볼넷을 내줘도 될 때가 있다."
- 시즌 중반 구속 저하도 겪었다. "시즌 초반 몸이 안 좋았을 때 변화구 구사 비율을 늘렸다. 변화구는 손가락을 쓰거나, 팔을 비틀어 던진다. 그래서 팔 스윙이 느려질 수 있다. 이런 습관이 잦아지다 보니 직구를 던질 때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아무리 강하게 던져도 시속 135km에 그칠 때도 있었다. 2군에 내려갔을 때 동료 포수와 코치님에게 이 부분을 조언받았고, 이후 직구를 늘렸다. 이후 원래 구속을 찾았고 내 생각대로 타자를 상대했다. 부진한 성적에 핑계를 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난해보다 좋은 모습을 보일 자신이 있다."
◇ 차우찬과 맞대결? 둘 다 7이닝 1실점 '무승부' 바라
- 차우찬이 LG로 이적하면서 2 대 2 트레이드 모양새가 됐다. "네 명 다 팀의 기대에 부응했으면 좋겠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가 할 일은 어디서나 같다. 전 소속팀 팬들에게 실망은 안긴 만큼 더 잘해야 한다. 물론 새 팀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핑계로 삼을 순 없다. 차우찬과 나는 좋은 대우를 받았다. 무조건 잘해야 한다. 욕심을 내진 않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 차우찬과 시즌 내내 비교될 수 있다. "차우찬은 매년 나아지는 투수다. 성적이 차이가 나면 당연히 신경 쓰일 것이다. 하지만 자극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상대보다 못해서 비난받는 게 아니다. 내 몸값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 받는 비난은 당연하다."
- 계약 후 차우찬과 대화를 나눴나. "삼성과 계약하고 내가 먼저 차우찬에게 연락했다. 조심스러운 시기였다. 그저 바람만 전했다. '함께 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강한 선발진을 구축해 보자'고 했다. 아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차우찬이 '삼성 투수진은 분위기가 좋고, 야구하기 좋은 환경이다'고 말해 주더라. LG 투수들은 모바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단체 대화방에서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삼성도 그렇다고 하더라. 차우찬도 현재 LG 대화방에 들어와 있다"
- 맞대결을 펼친다면 어떨까. "첫 맞대결에선 무조건 두 명 다 잘해야 한다. 7이닝 1실점으로 막아 내고 1 대 1이나, 동점 상황에서 둘 다 마운드를 내려오는 게 바람직할 거 같다."
- 차우찬의 보상선수로 지명된 이승현도 기대를 받는다. "이승현은 야구 열정이 큰 투수다. 고민도 많이 한다. 그동안 기회가 많지 않았다. 삼성 마운드에 힘이 될 것이다."
- 잠실에 새 둥지를 트는 차우찬에게 조언을 한다면. "최근 몇 년 동안 LG 투수들 사이에 친밀도가 커졌다. 그 덕분에 성적도 좋아졌다. '형이 못 막으면 내가 막아 줄게' '내가 더 길게 던질게'라는 말을 자주 주고받는다. 적응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후배들이 '커피 찬스'를 자주 쓸 것이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오지환과 유강남이 분위기 띄우는 역할을 잘한다. 진해수는 진중해서 고민 상담을 하면 좋을 것이다."
- 잠실구장에 원정팀 선수로 간다. 상상해 봤나. "서울에 가면 원정팀 숙소로 향하게 된다. 국가대표팀 소집 때를 제외하면 서울에서 숙소 생활을 한 적이 없다. 잠실구장 원정팀 라커 룸과 LG 라커 룸이 3루 쪽에 붙어 있지 않나. 나도 모르게 LG 라커 룸으로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요즘 LG를 떠난 박경수, 이대형 선배와 얘기를 많이 나눈다. 마침 LG의 2017년 홈 개막전 상대가 삼성이다. 로테이션을 감안하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마주칠 LG 팬에게 무엇을 바랄 순 없다. 그저 LG 선수와 같은 야구인으로 봐 줬으면 좋겠다.
- 내년 시즌 보여 주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나는 승·패·평균자책점뿐 아니라 세부 기록도 관리한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투수가 더 좋은 성적을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내가 그동안 야구를 해 온 방식이다. 정상급 투수들과 기록을 비교하고, 알맞게 목표를 수정해 왔다. 올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전만큼 예민해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겠다. LG에서 너무 행복했다. 이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