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 KBO리그를 관통하는 화두는 '자율'이다. 예년보다 비활동기간이 길어졌고, 활동 규정이 엄격해진 탓이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12월 야구장 출입조차 금지됐다. 1월부터는 출입할 수 있지만 구단 소속 코치·트레이너와 접촉해선 안 된다. 현장에선 볼멘 소리도 나온다. KBO리그는 '프로야구'지만 아직 '자율'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다. 저연차·저연봉 선수에게 개인 훈련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는 현실적인 지적도 있다. 김선웅 선수협회 사무총장도 "비활동기간이 정착하는 과정이다"며 보완 여지를 남겨뒀다.
하지만 선수 개인에겐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다. 다수 선수가 예년과 비슷한 시기에 '알아서' 개인 훈련을 시작했다. 여유를 갖고 자신의 과제에 접근하고 있다.
LG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투수 우규민은 1월 3일 사이판으로 떠났다. 따듯한 장소에서 개인 캠프를 차렸다. 2015년 시즌 뒤엔 12월 말부터 개인 훈련을 시작했다. FA(프리에이전트) 자격 취득을 앞둔 시즌이라 의욕이 컸다. 결과는 실패. 그는 시즌 내내 제 컨디션을 보이지 못했다. "다소 오버페이스 같다"던 강상수 LG 코치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우규민도 "훈련은 정말 많이 했지만 이전 몇 년 동안 지켜오던 루틴이 깨진 거 같다. 투수는 휴식도 중요하다. 이를 간과했다"고 했다.
올해는 조바심은 버렸다. 쫓기듯이 몸을 만들 생각은 없다. 우규민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개막 전에 있다 보니 몸을 빨리 만들어야한다는 변수가 생겼다. 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할 생각이다. 지난해 부족했던 점도 면밀히 들여다 보겠다"고 말했다.
LG 투수 임정우도 여유를 가질 생각이다. 지난해 팀 마무리투수로 안착한 그는 28세이브를 올리며 이 부문 2위에 올랐다. 높아진 기대치는 선수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임정우도 "그 점을 이겨내야 진짜 마무리투수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겨울 체력 보완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그는 "후반기 급격하게 구위가 떨어졌다. 기초 훈련을 병행하면서도 충분히 휴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욕심내기보다는 가장 중요한 것을 차분히 준비할 생각이다"고 했다.
롯데 간판 타자 손아섭도 같은 생각이다. 이번 겨울 목표는 '손아섭의 야구'를 정립하는 것이다.
그는 리그를 대표 '배드볼 히터'다. 수비와 주루 모두 "단순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을 뛰며 '생각하는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코칭 스태프와의 대화도 이전보다 많아졌다. 손아섭은 "이번 겨울 동안 내게 가장 어울리는 야구를 정립하고 변화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할 생각이다. 시즌 중에 혼란이 오지 않도록 말이다"고 전했다. 그런 그에게 캠프 전까지 길어진 비활동기간은 반갑다. 손아섭의 개인 훈련은 이미 12월부터 시작됐다.
어떤 방침이든 부작용은 따른다. 길어진 비활동기간 때문에 문제를 겪는 선수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보다 긍정적인 변화가 더 크다면 그것으로 된다. 고액 연봉 시대에 프로야구 선수들은 구단이나 팬의 생각보다 더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이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