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A학생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야구부에서 투수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고교 야구팀에 스카우트 됐고, 프로 진출의 꿈을 키워 갔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회를 준비하던 중 불의의 부상을 당했다. 의사로부터 "공을 던질 수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A는 막막했다. 야구 외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는 물론 대학 진학도 어려운 상황. 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사례2. B학생은 야구가 좋았다.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수도권 고등학교 야부구의 백업 멤버로 뛰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기량이 뛰어난 친구 C는 대학 야구부의 선택을 받았다. C의 친구 D와 E도 같은 대학교로 진학이 결정됐다. 그러나 B는 대학 야구부에 진학할 실력도, 함께 진학을 도모할 친한 친구도 없었다. 야구가 좋아 공부에 소홀했던 자신을 처음으로 원망했다. 선택지가 없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프로와 대학의 선택을 받지 못한 고교 야구선수의 숫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대한야구협회 등록 기준으로 고등학교 야구부는 69개. 하지만 대학 야구부는 고교 야구부 숫자의 절반도 되지 않는 31개에 불과하다. 2006~2015년 사이 고교 야구팀은 12개, 등록 선수는 738명이 늘어났지만 대학팀은 3개, 정원 85명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프로 구단 지명(최대 100명)을 더해도 고교 졸업반 선수를 모두 감당할 수 없는 실정이다.
과거에 비해 학원 스포츠에서 출석과 수업 이수는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엘리트 스포츠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학창 시절 오로지 야구에 집중한 학생들은 일반 학생들에 비해 학업 능력이 부족하다. 특기생이 아니고서는 일반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다. 야구공을 놓고 적성도 찾지 못한 채 진로를 고민해야 한다. 대학의 문턱을 넘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다면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에서 이들을 맞아 줄 곳은 많지 않다.
2015년 서울 소재의 A고교 야구부 졸업생은 13명. 프로 선수를 다수 배출한 학교지만 프로나 대학 야구팀에 들어간 학생은 절반이 되지 않는 6명이다. 나머지 7명은 지방대학에 일반 학생으로 진학했거나,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찌감치 군 입대를 택한 이도 있다. 야구공은 당연히 놓았다. 야구를 계속하고 싶지만 이들을 받아줄 곳이 없다. 학창 시절 흘린 땀은 이들의 미래에 큰 의미가 없었다.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야구부 출신 학생을 대학교 소속 평생교육원에서 받아들인 뒤 야구부 창단과 리그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야구에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사회에 적응할 교육을 병행한다는 취지다.
1990년대 초·중반 OB 베어스의 강속구 투수로 유명했던 박상근(47)은 지금 가천대 평생교육원 체육학과 소속으로 야구부 창단을 준비하고 있다. 신임 감독을 맡았다. 박 감독은 "학교의 허가를 받았고, 신입생 모집을 준비하고 있다"며 "야구만 하다 사회에 나오니 정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고졸 선수들이 많다. 야구를 계속하면서 학업을 이어 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가천대와 같은 취지로 야구부를 운영하는 곳이 있다. 세종대 평생교육원 체육학과는 지난 2014년 1월 야구부를 창단했다. 프로 입단이나 대학 진학에서 좌절을 맛본 선수들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몰려들었다. 원하는 야구를 할 수 있게 됐지만, 뛸 수 있는 무대가 없었다. 세종대 야구부는 대학리그 참여를 위해 대학야구연맹 가입을 추진했지만, 1·2부 리그 팀의 반대에 부딪혔다. 평생교육원이 정식 대학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대한야구협회에서도 등록을 받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돌파구가 열렸다.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야구도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이 통합됐다. 대한야구협회(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지난해 세종대 야구부를 '클럽'으로 등록시켰다. 세종대와 가천대뿐 아니라 KBS스포츠예술과학원과 평생교육원 등 모두 5개 팀이 등록을 마쳤거나, 준비 중이다. 세종대의 경우 정식 리그에 소속돼 있지 않아 경기할 상대팀을 구하기 어려웠다. 여러 팀이 클럽으로 등록되면 리그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연주 KBS스포츠예술과학원 교수는 "고 3까지 야구선수를 했지만, 프로나 대학에 가지 못한 선수들이 많다"며 "중간 지점에서 진로를 잡아 줘야 한다. 기초학력을 다져 주면서 장점인 야구를 할 수 있다면 1석 2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본다. 스포츠 산업 관련 자격증 취득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3부리그가 개최된다면 대학 야구의 '독립리그'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3부리그에서 뒤늦게 재능을 꽃피운 학생은 1~2부 소속 대학 야구부로 편입을 하거나, 트라이아웃을 통해 프로 진출이 가능하다. 박 감독은 "선수는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며 "3부리그 선수도 프로 입성 가능성이 충분하다. 대학 야구 저변 확대와 선수 수급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본다. 대학 야구의 독립리그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겠다"고 말했다.
대한야구협회와 대학야구연맹은 3부리그 창단 움직임을 인지하고 있다. 대학야구연맹 관계자는 "3부리그 개최와 관련된 공문을 받았다"며 "연맹 회장이 새로 선출돼 아직 새로운 집행부가 인준되지 않은 상태다. 이사진이 인준된 뒤 이사회에서 관련 사안이 논의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