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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561. 새로운 역사
정유년이 시작됐다. 60년 전인 1957년, 그해도 정유년이었다. 그해 나는 유난히 전학이 잦았다. 아버님의 임지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전주에서, 충주, 진해까지 갔다가 다시 전주로 돌아왔다. 5학년 때 일이었다.
다시 전주초등학교로 돌아와 보니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 그 친구는 형제만 7명이 있었다. 당시에 아들만 7명이면 부러움을 받았지만 친구네 부모님은 딸을 갖는 게 소원이었다. 딸을 낳고자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던 중 마침내 1957년 정유년에 득녀를 하게 됐다.
친구는 학교에 오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7형제에서 8남매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 같으면 어떻게 아이를 8명을 낳느냐고 하겠지만 그때는 7~8명 낳는 건 흔한 일이었다. 친구는 여동생이 예쁘게 생겼다면서 자랑했다. 여동생이 없는 나로서는 은근히 부러운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내 친구에게 여동생이 생겼대요. 정유년에 태어난 여자 아이는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명리학에 능통하셨기에 내가 그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족집게처럼 대답해주시곤 했다. “정유년 딸은 매우 총명할 거야”라고 말씀하시며 “정유년에는 항상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단다. 올해 정유년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지켜보자구나”라고 했다. 지금도 그 말씀을 하실 때 어머니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1957년 대한민국은 6·25 전쟁이 휴전된 지 몇 해 안 되던 때라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았다. 자유당 정권의 극심한 부패로 사람들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면서 정권을 바꾸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자유당 정권은 1960년 3·15 부정선거,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몰락하지만 그 시작은 1957년부터였다.
북한의 상황도 격변했다. 1956년에는 연안파가 대대적으로 숙청당했다. 이듬해인 1957년 제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했고,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했으나 그 이후에도 계속된 숙청으로 영화 ‘암살’ ‘밀정’ 등에도 등장한 바 있는 김원봉마저 숙청됐다.
역사에는 언제나 시작점이 있다. 정유년은 바로 그런 해이다. 정유년을 상징하는 닭은 새벽을 깨운다. 오죽하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밝아온다’는 말이 있겠는가. 역사의 흐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오래 전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한 술자리에 김씨, 이씨, 박씨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씨는 “우리 이씨는 이승만 대통령이 있다”고 하자 박씨는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있다”고 했다. 당시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등장하기 전이라 김씨는 자랑할 게 없었다. 그래서 “우리 김씨는 북한에 김일성이 있다”고 했다가 감옥에 끌려가 꽤 오랜 시간동안 고생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
8~9년 전만해도 촛불집회는 위험했다.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열었을 때, 평범한 주부, 직장인, 학생 등 일반시민들은 형사기소를 당하기도 했다. 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는 ‘아동학대혐의’를 받기도 했다. 2016년 촛불집회는 달라졌다. 1957년 ‘못살겠다, 갈아보자’로 처음 눈을 뜬 민주주의는 2016년 대통령을 탄핵시켰고, 2017년 헌재의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큰 시련을 딛고 국민은 강해졌다. 2017년 정유년은 대한민국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해가 될 것이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