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개장된 잠실야구장 대신 새 야구장이 지어질 예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보도 자료를 통해 "잠실종합운동장 일대를 2025년까지 스포츠·문화가 복합된 글로벌 마이스(Meeting·Incentives·Convention·Exhibition) 거점으로 조성하겠다"며 "잠실야구장은 한강을 배경으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한강변으로 옮기고 좌석은 국내 최대 규모인 3만5000석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개발계획을 살펴보면 새 잠실야구장은 북서 측 보조 경기장이 있는 한강변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관중석은 기존 2만6000석에서 9000석 늘어난 3만5000석으로 확장된다. 건립 형태는 지금과 같은 개방형 구장, 폐쇄형 돔, 개폐형 돔 중 하나로 결정된다. 2025년 완공 목표에 따라 2019년 공사가 시작될 예정인데, 서울시는 현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KBO 리그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단계적 순환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서울시는 "100% 민간 자본을 조달해 새 잠실야구장을 건설하겠다"는 입장이다. 개방형에서 폐쇄형 돔, 개폐형 돔으로 갈수록 건설 및 운영 비용은 크게 늘어난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전문가·시민 토론회를 열고 새 잠실야구장의 건립 형태에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다수의 전문가들은 "건립 형태보다 우선 논의되어야 하는 건 투자 주체와 비용 조달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개방형 구장은 약 2500억원(3만5000석 기준), 폐쇄형 돔은 3000억원, 개폐형 돔은 4000억원이 건설비로 필요하다는 추산이다. "구체적인 비용 조달 계획도 없는 상황에서 건립 형태를 논의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나왔다.
서울시는 일단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한국무역협회와 16개사가 참여하는 한국무역협회 컨소시엄이 '잠실운동장 일대 스포츠·마이스 인프라 건립 민간투자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 제안서에 따르면 컨소시엄은 민자 2조4918억원을 투입해 잠실운동장 일대를 일명 '올림픽 트레이드 파크(OlympicTradePark)'로 만들 계획이다. 12만㎡에 이르는 전시·컨벤션을 중심으로 3만5000석 규모의 야구장, 1만1000석 규모의 스포츠 컴플렉스, 70층짜리 업무 시설, 600실 이상의 특급 호텔을 짓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야구계는 우려하고 있다. 한 프로야구단 관계자는 "민간 자본은 온전히 야구장을 지으려는 주체가 아니다"며 "컨벤션센터와 상업 시설을 짓고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스포츠 분야의 경력이 없다. 메이저리그는 온전히 야구장 건설을 위해 적게는 수천억, 많게는 1조 단위의 돈이 투입된다. 그러나 잠실구장은 부수적인 시설일 뿐"이라고 우려했다.
고척스카이돔이 그 사례다. 서울시는 세금이 투입된 구장 시설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처음부터 야구 경기와 문화 공연을 동시에 치르는 구장이라는 개념을 잡았다. 이중 목적의 구장 설계는 미국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시행착오가 일어났고, 결과적으로 계획보다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됐다. 지금도 고척스카이돔은 3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개최를 위해 전광판 교체 사업을 진행 중이다.
민간 자본으로 새 구장이 완공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야구장 임대료와 수익 배분을 두고 구단과 마찰이 예상된다. 민간 투자자는 투자금 회수와 수익 창출이 목적이다. 구장 임대료 상승은 불가피하다. 고척스카이돔의 경우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고 있다. 프로야구 경기 유치를 위해 당초 우려보다는 홈구장 넥센의 임대료 상승분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민간 사업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본 프로야구는 12개 구단 홈구장 중 5개가 구단 모기업의 소유다. 5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임대하며, 2개는 사기업이나 민간 법인 소유다. 사기업 소유의 경우 임대료가 비싸다. 소프트뱅크는 2012년 3월 후쿠오카돔을 싱가포르정부투자공사로부터 매입했다. 연간 임대료가 50억 엔(현재 환율 약 514억원)에 달해 만성 적자가 불가피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임대료 상승 뿐 아니라 구장 펜스 광고권 및 식음료·상품 판매권 행사에도 제약이 걸릴 방침이다. 강민호 KBO 기획팀장은 "민간 투자자는 연간 10% 이상 수익을 목표로 한다. 3000억원을 투자했다면 300억원의 수익을 얻고자 할 것이다. 새 잠실야구장을 이용할 LG·두산이 투자자의 투자자 수익 보전을 위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할 위험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땅 주인'인 서울시가 수익 배분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서울시는 지금도 잠실구장을 두산·LG에게 빌려주며, 소유주로서 '권리'를 최대한 행사하고 있다. 2012년 두산·LG로부터 잠실구장 광고권을 회수했고, 지난해까지 5년 동안 펜스·전광판 광고료만으로 454억원9000만원을 벌었다. 올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지는 것으로 보였다. 지난 2015년 7월 서울시의회는 '서울특별시립체육시설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잠실야구장과 고척돔을 홈으로 사용하는 연고 구단에 계약 우선권을 준다는 게 골자다. 구단이 서울시에 감정평가에 따라 일정액을 납부한 뒤 광고 수익 차액을 가져가게 했다. 광고권을 구단에 돌려준 것이다.
그러나 지난 12일 본지 보도('잠실야구장 광고 구단에 환원? 결론은 서울시의 생색내기')에 따르면 서울시는 올해부터 2019년까지 잠실구장의 연간 광고권 판매 금액 143억3700만원의 76.6%에 해당하는 109억8850만원을 챙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두산과 LG의 광고권 수익은 각각 16억7425만원으로 서울시에 납부하는 연간 구장 사용료(25억5000만원)와 비슷한 금액만 광고권 수익으로 돌려받는다.
서울시의 새 잠실야구장 건립 계획에서 눈에 띄는 건 LG와 두산이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구단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야구장 건설과 관련해 추후 협의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 다른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LG와 두산을 배제하고 새 구장 건설을 논의할 수는 없다. 강민호 팀장은 "서울시가 말하는 100% 민간 자본에 두산과 LG는 이미 포함돼 있을 수도 있다. 서울을 떠날 수 없는 두산과 LG가 '울며 겨자 먹기'로 건설 비용을 떠안을 것 같아 우려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구단이 새 잠실야구장에 투자를 해도 운영권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가까운 사례가 광주에 있다. KIA는 챔피언스필드 건설 당시 300억원을 투자하고, 광주시로부터 25년 동안 운영권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시민단체에서 '대기업 특혜'라며 반발했고, 재협상이 진행 중이다. 광주시에서 당초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강 팀장은 "지자체의 협조 없이 야구 산업은 발전할 수 없다. 프로야구를 돈벌이의 수단이 아닌 시민의 여가를 위한 공공재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