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한국시간) 공식 퇴임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7일 백악관에서 뜻깊은 손님들을 맞았다.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108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시카고 컵스 선수단이다.
월드시리즈 우승팀의 백악관 방문은 오랜 전통이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이 전통은 율리시즈 그랜트 대통령이 최초의 프로야구팀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 선수단을 백악관에 초청한 18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다소의 파격이 있다. 2000년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팀은 그해 대통령 선거가 열린 경우 새 대통령의 임기에 백악관을 방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나흘 뒤 백악관을 떠난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인 고향은 시카고다. 하지만 응원팀은 컵스가 아닌 시카고 화이트삭스다. 시카고에서 대체로 서민층은 화이트삭스, 중산층 이상은 컵스를 응원한다. 그러나 같은 시카고 연고 팀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도 트위터를 통해 컵스에 응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미국 언론 일각에선 '컵스 선수 일부가 도널드 트럼프 신임 대통령의 초청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월드시리즈 챔피언을 맞아 오바마 대통령은 특유의 유쾌한 농담으로 좌중을 웃게 했다. 그는 "컵스가 우승할 때 백악관에 있는 누구처럼 본능적으로 좋아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미셸 오바마 영부인은 열정적인 컵스 팬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우승팀 유니폼을 입는 전통에 대해 "컵스 유니폼을 걸치기 힘들지만, 화이트삭스 팬 가운데 내가 최고의 컵스 팬이라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해 주위를 폭소케 했다. 컵스 구단은 44대 대통령인 오바마에게 번호 44가 달린 유니폼을 선물했다. 더불어 리글리필드 전광판의 숫자 44, 리글리 필드 가족 평생 입장권 등을 선물로 건넸다.
오바마 대통령은 보스턴에 이어 컵스의 '저주'까지 깨트린 테오 엡스타인 단장에게 러브 콜을 보냈다. 그는 "엡스타인 단장은 보스턴에 이어 컵스까지 108년 만에 우승시켰다"며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의장으로 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엡스타인 단장은 현명하게 '야구계에 남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모든 컵스 선수단은 박장대소했다. 엡스타인 단장을 현재 공석인 DNC 의장으로 섭외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고 싶다는 우스갯소리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컵스 선수단을 초대한 17일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탄생을 기리는 연방 공휴일이다. 일각에선 이날 컵스 선수단을 초청한 것에 대해 비판했지만, 오바마는 "스포츠는 정치가 실패한 곳에서 미국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며 "가끔 사람들은 다른 일이 벌어질 때 왜 스포츠로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해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스포츠는 심지어 우리가 갈라져 있을 때도 우리를 하나로 통합하는 힘을 발휘했다"고 일축했다. 이어 "재키 로빈슨(메이저리그 첫 흑인 선수)과 여기 서 있는 나(첫 흑인 미국 대통령) 사이에 직접 연결되는 선이 있다"며 역사의 맥락에서 스포츠의 존재 의미를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난 베테랑 포수 데이브 로스를 두고 "로스와 나는 일 년 내내 은퇴 파티를 즐길 것"이라고 농담해 좌중을 웃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