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회 WBC는 한국 대표팀에게 있어서 악몽과도 같았다. 강팀들을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펼치며 4강과 결승전에 진출했던 앞선 대회들과는 달리 예선전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기 때문이다.
예선 탈락의 원인은 첫 경기였던 네덜란드 대표팀에게 맥없이 패한데 있었다. 당시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선수들과 마이너리그의 유망주들로 신-구가 조화된 선수단을 구성했던 네덜란드는 기대 이상의 전력을 선보였었다. 대회 첫경기에서 그들에게 0:5로 맥없이 패배를 당하고 말았고, 첫 경기에서의 부진을 끝끝내 극복해내지 못했다.
그런 네덜란드 대표팀과의 악연은 4년뒤인 2017년에도 이어지게 되었다. 대만, 이스라엘 등과 함께 WBC 본선 1라운드 A조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나쁜 소식은 더 있다. 지금의 네덜란드 대표팀은 그 때의 네덜란드 대표팀보다 더 강력한 팀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당시 마이너리그의 유망주에 불과했던 선수들은 4년 사이 메이저리그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다. 4년이 흘러 고척스카이돔에서 다시 만나게 된 네덜란드 선수단의 면면을 알아보았다.
◇코치진
감독은 헨슬리 뮬렌 샌프란스시코 타격 코치가 맡게 되었다. 그는 지난 3회 WBC에서도 팀을 맡아 좋은 성적을 기록했던 바 있다. 재밌는 점은 그가 한국 무대에서도 뛰었다는 점이다. 99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타자 외국인 선수로 입국해 17경기에 출장했었다.
투수 코치는 버트 블라일레븐이 유력하다. 통산 287승을 거둔 전설적인 투수로, 지난 2011년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바 있다. 특히 박병호의 소속팀인 미네소타 트윈스에서는 149승을 거두며 전성기를 보냈다. 미네소타 트윈스는 그의 등번호인 28번을 영구 결번처리했다. 현재도 미네소타의 지역 방송국에서 해설을 맡고 있을정도로 지역 팬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레전드 중 한 명이다.
우리 나라의 수석 코치 역할인 벤치 코치 역시 친숙한 이름이 맡을 전망이다. 과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당대 최고의 중견수로 활약했던 앤드류 존스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지난번 WBC에는 선수로 참가해 팀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그는, 이번에는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유럽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지도자들인 스테브 얀센, 시드니 데용, 벤 티센, 빔 마르티누스 등이 코치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내야
내야진은 네덜란드 대표팀의 가장 큰 장점이다. 미국,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트리코 등 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만큼 탄탄한 선수층을 자랑한다. 수비의 핵심인 유격수 자리는 LA 에인절스의 주전 유격수 안드렐톤 시몬스가 유력하다. 시몬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수비형 유격수다. 평균 이하의 타격을 선보이면서도 지난 5년간 평균 3의 f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를 기록했다.
3루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유격수 잰더 보가츠가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보가츠는 카를로스 코레아, 코리 시거, 프란시스코 린도어 등과 함께하는 ‘젊은 유격수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주인공이다. 그들보다 한 해 빠른 2014년 주전 자리를 꿰찼다. 15년 0.320의 타율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타격 2위에 올랐던 그는, 16년에는 장타력에 있어서 큰 발전(15년 7홈런 -> 16년 21홈런)을 이룩했다. 소속팀에서와 같이 팀의 중심타선에 포진할 것으로 보인다.
1루수와 2루수 자리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조나단 스쿱과 뉴욕 양키스의 디디 그레고리우스가 양분한다. 과거 추신수와의 3각 트레이드에 연루되어 한국팬에게 잘 알려진 바 있는 디디 그레고리우스는 지난 2년간 뉴욕 양키스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공고히 했다. 그레고리우스 역시 보가츠와 마찬가지로 올시즌 장타에 눈을 뜬 모양새다. 2012년 데뷔 이후 4년간 단 25개의 홈런을 기록했지만, 올시즌은 20개의 아치를 그렸다. 조나단 스쿱은 올시즌 볼티모어의 162경기 전경기를 출장했다. 그 역시 일발 장타력이 가장 큰 장점이다. 올시즌 0.267의 타율과 함께 25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4년 전 WBC 대표팀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의 가장 큰 약점은 포수 자리였다. 마땅한 선수가 없어 쇼트시즌 싱글 A에서 뛰었던 다센코 리카르도를 주전 포수로 기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괜찮은 대안이 등장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름은 워싱턴 내셔널스의 스펜서 키붐이다. 키붐은 스카우트들로부터 ‘제 2의 데이빗 로스’, ‘수비형 포수의 모든 것을 갖춘 선수’라고 평가 받는다. 포구 기술과 블로킹 기술이 뛰어나서 투수들에게 안정감을 주며, 리더쉽이 뛰어나고 경기 조율 능력이 눈에 띈다는 평가다. 올시즌 더블 A에서 0.230/0.324/0.314라는 형편 없는 타격을 선보였지만, 9월 메이저리그로 콜업 되었을 정도다. 시즌이 끝난 후에도 팀의 40인 로스터 잔류에 성공했고 팀의 백업 포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얼마전 신시네티 레즈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션 자라가도 호시탐탐 주전 자리를 노리고 있다. 더블 A 220경기에서 기록했던 0.390이라는 높은 출루율이 가장 큰 장점. 현역 메이저리거들이 불참했던 지난 11월 일본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는 팀의 주전 마스크를 썼었다.
◇외야
일본프로야구의 강타자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외야수 자리에 우선적으로 꼽힌다. 2013년 0.330/0.455/0.779라느 괴물같은 비율 성적과 함께 리그 역사상 최다인 60개의 홈런을 쳐내 화제에 올랐던 바 있다. 올시즌도 0.269/0.369/0.516과 3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건재함을 알렸고, 1년간 300만 달러에 소속팀과의 재계약에 성공했다.
외야의 또다른 한 자리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쥬릭슨 프로파가 유력하다. 한때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망주(2013년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전미 유망주 1위)로 꼽혔던 그는, 오랜 부상으로 제 활약을 못하고 있다. 그의 부상을 틈타 2루수 자리는 루그네르 오도어가 차지했다. 그 결과 소속팀에서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하며 적잖은 외야수 경험(36경기)를 쌓았다. 그의 외야 수비 경험은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탄탄한 내야진에 비해 외야진의 깊이는 얕기 때문이다. 프로파는 이번 WBC를 오랜 부상과 부진을 깰 반등의 기회로 삼고 있다. 지난 11월 일본과의 평가전에서도 메이저리거 중 유일하게 참가하는 등 이번 대회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2017시즌 기아 타이거스에서 활약하게 된 로저 버나디나도 네덜란드령 퀴라소에서 태어난 선수다. 4년전 대회에서 팀의 주전 중견수 겸 리드오프로 활약했던 바 있다. 다만 대회 참가는 아직 미지수다. 대부분의 팀은 소속 외국인 선수들의 국제 대회 참가를 썩 반기지 않는다. 버나디나가 불참할 경우 남은 외야 한자리의 주인공은 불투명해진다.
한 가지 방법은 풍족한 내야수 중 한 명을 끌어다 쓰는 것이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유격수 유망주 오지 알비스는 마이너리그 최고의 재능 중 한명으로 꼽힌다. 만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 이미 트리플 A까지 올라왔으며 메이저리그 데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전문 외야수를 기용할 경우 랜돌프 오두버가 유력하다. 15년 워싱턴 내셔널스의 더블 A팀까지 올라갔으나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못하고 네덜란드 리그로 되돌아 갔다. 1년 전 프리미어12 대회에서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고, 대회 올스타에 선정되었던 바 있다. 2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할 수 있는 빠른 발이 장점으로 꼽힌다.
[ 2013~14년 삼성에서 활약한 릭 벤덴헐크]
◇발목을 잡아왔던 투수진, 밴댄헐크의 합류
네덜란드 최고의 투수는 LA 다저스의 마무리 투수인 켄리 젠슨이다. 아롤디스 채프먼과 함께 현시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꼽히는 그는, 이번 겨울 5년간 약 935억에 재계약을 맺은바 있다. 11년 데뷔 이래 9이닝당 삼진 비율이 14개에 달한다. 다만 참가 여부가 불투명하다. 헨슬리 뮬렌 감독은 그의 합류를 자신했지만, 소속 팀에서는 허락해주지 않을 모양새다. 본인 역시 FA 계약 직후 인터뷰에서 WBC 대표팀 합류에 유보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젠슨이 불참하게 된다면, 투수진은 빈약해진다. 사실 4년전 3회 WBC에서도 그랬다. 좋은 타선을 가지고도 투수진의 실망스러운 활약으로 무너졌었다. 8강에서 만난 일본과의 경기에서 6개의 홈런 포함 16점을 내주며 예선에서의 돌풍을 이어나가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때는 없던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가 나타났다.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에이스인 릭 밴덴허크가 네덜란드 대표팀의 합류를 선언한 것이다. 밴덴허크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2014년 삼성 라이온스 소속으로 삼진 1위, 평균 자책점 1위등을 기록한 바 있다. 이후 일본 무대로 건너가 역대 외국인 선수 최장 기록인 14연승을 기록하며 연착륙에 성공했다. 확실한 1선발의 등장은 네덜란드 대표팀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인트루이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활약 중인 JC 술베런은 2선발감으로 꼽힌다. 더블 A 무대에서 500이닝을 던진 베테랑 투수다. 89년생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르기는 사실상 힘들어진만큼, 아시아 무대 진출을 위해 의욕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국, 일본, 대만 3국의 스카우터들은 국제 대회에서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기아 타이거스에서 뛴 지크 스프루일 역시 프리미어12 미국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토대로 계약에 성공했었다.
자이어 저젠스는 네덜란드 투수진에서 가장 높은 이름값을 자랑하는 투수다. 08년 데뷔 이후 3년 연속 10승을 기록했고, 올스타 유격수 에드가 렌테리아와 맞트레이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구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최근에는 마이너를 떠도는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했다. 지난해는 대만 프로야구 무대에서 뛰었으나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하다가 시즌 중 방출되었다.
이밖에 메이저리그에서 120이닝을 던진 바 있는 샤이론 마티스, 14년 라쿠텐 이글스에서 뛰었던 220cm의 장신 투수 록 반 밀, 4년전 한국 대표팀을 상대로 효과적인 투구를 펼쳤던 디에고마 마크웰 등이 주축 투수들로 꼽히고 있다.
◇관건은 밴댄헐크의 등판 경기
정리하자면 네덜란드의 타선은 그 어떤 팀과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는다. 특히 내야수 자리는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대표팀에 비해서도 우위에 놓을만하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타선과 수비의 힘은 A조 4팀 (한국, 대만, 네덜란드, 이스라엘) 중 가장 강력하다. 약점은 투수진이다. 릭 밴댄허크를 제외하면 마땅한 선발 투수감이 보이지 않는다. 더블 A에서는 곧잘 던졌던 JC 슐베런이 있지만, 공략 못할 투수는 아니다.
때문에 관건은 밴댄헐크의 등판 경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선발과 2선발의 기량 차이가 매우 큰 만큼, 그의 등판날짜에 따라 A조 다른 3팀의 희비가 엇갈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프로야구 무대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전에 표적 등판 시킬까. 아니면 한국을 A조 강팀으로 분류하고, 대만과의 2위 싸움에 대비할까. 네덜란드 감독 헨슬리 뮬렌의 선택이 궁금하다.
임선규(야구공작소) 야구 콘텐트, 리서치, 담론을 나누러 모인 사람들. 야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