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축구해설위원 겸 방송인 이천수(35)와 서울 이랜드 FC 15세 이하(U-15) 감독 최태욱(35)이 기다렸다는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역 시절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이들은 은퇴 뒤 각자의 길을 개척하며 새 출발을 알렸다. 이천수는 2015년 12월부터 K리그 현장을 비롯해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했고, 최태욱은 같은 해 11월 프로축구 산하 유스팀 지휘봉을 잡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약 1년간의 적응기를 거친 이천수와 최태욱은 '닭의 해'를 맞아 정상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다. 1981년생 닭띠인 이들은 1997년 처음 만나 지난 20년간 희노애락을 함께해 온 인생의 동반자다.
이천수에게 '닭의 해'는 기분 좋은 기억이다. "내 축구 인생에서 정점을 찍었던 시절은 공교롭게도 12년 전 '닭의 해'였다. 2005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떠나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었는데 전체 시즌의 절반만 뛰고도 팀의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최태욱도 그때를 회상하며 씨익 웃었다. "2005년은 내게도 즐거운 기억이다. 축구로 보면 시미즈 S펄스(일본)로 이적하며 해외 진출을 경험했고, 개인적으로는 우리 첫째 아들이 태어난 해기도 하다."
부평고 동기 이천수-최태욱 콤비는 당대 최고의 공격수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들은 지난 1999년 춘계연맹전, 백운기, 대통령금배 등 전국 대회 3관왕을 이뤄 내며 고교 무대를 평정했다.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는 나란히 19세의 나이로 3~4세 위 선배들이 주축을 이룬 올림픽팀에 박탁됐다. 당시 이천수는 머리 하나 큰 수비수들과 볼 다툼에서도 지지 않는 근성과 화려한 드리블에 이은 날카로운 슈팅을 앞세워 '밀레니엄 스타'로 불렸고, 최태욱은 100m를 11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과 지칠줄 모르는 체력으로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탐내는 특급 유망주였다.
두 친구의 축구 인생 하이라이트는 2002 한일월드컵이다. '명장' 거스 히딩크(71·네덜란드) 감독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이천수와 최태욱은 축구대표팀에 뽑혀 안방에서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닭의 해를 맞아 다시 한 번 비상을 꿈꾸는 두 친구를 지난 25일 서울 삼성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 '해설자 겸 방송인' 이천수로 전업한 지 막 1년이 지났다. 친구 이천수를 평가한다면.
최태욱(이하 최) : "예전부터 (이)천수는 은퇴 이후 TV에서 보게 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워낙 끼가 많았다. 물론 아직 시청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 줘야 한다.(웃음) 아직 천수가 가지고 있는 재능의 반도 못 보여 준 것 같다."
이천수(이하 이) : "(최)태욱이 말이 맞다. 방송에서 내 점수는 아직 50점도 안 된다. 반면 태욱이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로 완벽히 자리 잡았다."
- 감독으로서 최태욱은 어떤가.
이: "태욱이가 지도하는 모습을 봤는데 '초짜 감독'의 어설픈 모습이 하나도 안 보였다. 팀을 이끄는 '보스'의 느낌이 났다. 무엇보다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농담하는 모습에 놀랐다. 내가 아는 태욱이의 입에서 농담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웃음)"
최: "선수 시절 여러 지도자를 만났다. 그중에서도 히딩크 감독님을 만나면서 지도자라는 위치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선수만큼이나 지도자의 영향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 주신 분이다."
- TV에서 물오른 이천수의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이: "운동만 하던 사람이 이미지를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방송은 초보였기 때문에 어딜 가든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이제는 '방송인' 타이틀이 좀 익숙해졌다. 방송 선배들을 만나도 '초반에는 불안한 것처럼 보였는데 최근에는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해 보인다'고 하신다. 첫해에 매력을 다 보여 주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다.(웃음) 지난 1년간 유재석, 강호동과 같은 예능계 1인자들을 보며 많이 배웠다. 큰 힘이 되는 '흥라인(김흥국 라인)'도 유지하고 있다.(웃음) 올해는 나머지 50점을 더 올려서 100점을 만들겠다."
- 이천수와 최태욱은 어린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다. 그런데 보통 라이벌은 '앙숙'이다.
이: "태욱이가 나를 잡아 줬다. 우리는 정반대다. 나는 '욱'하는 성격인데 태욱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참는 편이다. 라이벌은 친해질 수 없고, 친해져도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동반자라고 생각했다. 서로 잘하는 부분을 인정했다."
최: "동료로 만났기 때문에 둘이 같이 잘하자는 생각을 했다."
- 이천수는 '천재', 최태욱은 '노력파'라는 말이 있다.
이: "반대다. 우리 또래 중 '랭킹 1위'는 태욱이였다. 워낙 실력이 좋아 입학과 동시에 3학년들과 뛰었다. 그런 태욱이를 보면서 부럽기도 했지만 나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자극을 받았다. 직접 물어보고 배우기에는 자존심이 상해 멀리서 태욱이 움직임을 보고 따라했다. 그러자 나도 1학년 여름방학부터는 주전으로 올라섰다."
최: "천수는 지독한 노력파다. 고교 시절 1주일간 휴가를 받고 복귀하면 훈련에 적응하는 데 2~3일 걸린다. 잠깐 쉬었지만 몸이 무거워지고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휴가 전후가 똑같은 선수였다. 부상을 당해도 마찬가지였다. 타고났다기보다는 그만큼 개인 운동을 철저하게 했다는 뜻이다. 이런 근성 때문에 프로에서도 최고가 됐을 것이다."
- 서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어떤 친구인가.
이: "태욱이는 '축구선수 이천수'가 될 수 있게 뒤에서 버텨 준 친구다. 태욱이와 함께 축구를 했던 고교 시절이 가장 즐거웠던 때다."
최: "천수는 어디든 함께 발을 내딛을 수 있었던 동반자 같은 친구다. 프로 무대에서 나란히 감독 대 감독으로 지략 싸움을 펼칠 날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내가 이길 것이다.(웃음)"
- 2017년 각오는.
이: "지난번 '닭의 해'에 뭐하고 있었을까 생각해 봤더니 스페인 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다가 국내에 복귀해 울산에서 내 축구 인생의 가장 '핫한' 시기를 보냈더라. 당시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축구에서 최고가 돼 봤으니 올해는 방송에서도 최고 자리에 올라 보고 싶다."
최: "올해는 감독으로서 첫 우승을 해 보고 싶다. 춘계 대회가 그 첫 무대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철학이 있는 지도자로 한 단계 더 올라서는 2017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