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서울을 떠나면서, '서울'을 언급했다.
대표팀의 첫 번째 목표는 1라운드 통과다. 한국은 아시아 A조에 편성됐다. 대만, 네덜란드, 이스라엘과 같은 조다. 네 팀 가운데 두 팀이 조 1·2위로 본선 2라운드에 진출하는 방식은 이전과 똑같다. 한국 대표팀이 유독 이번 대회에서 설욕을 벼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2013년 3회 대회 1라운드에서 탈락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본선 1라운드 아시아 A조 경기가 열리는 장소가 바로 서울의 고척스카이돔이라서다.
한국에서 WBC가 열리는 것은 4회 대회 만에 처음이다. 명칭도 '서울 라운드'로 정해졌다. 한국의 수도 이름을 걸고 치르는 첫 WBC 경기다. 다름 아닌 서울에서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 들고 싶지 않은 게 대표팀의 솔직한 속내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도 12일 전지훈련지인 일본 오키나와로 출국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부담감을 표현했다. 2006년 1회 대회 4강,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은 물론, 2015 프리미어 12 우승까지 이끌어 낸 베테랑 국가대표 감독. 그러나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긴장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선수 선발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대회 장소가 서울이라는 점에 부담을 많이 느꼈던 김 감독이다. 같은 조에 속한 네덜란드는 메이저리거가 대거 포진한 강팀이고, 무엇보다 지난 대회에서 한국 탈락에 결정적인 패전을 안겨 줬다. 대만은 객관적인 전력에선 한 수 아래로 평가받지만, 한국과 상대할 때마다 유독 끈질긴 승부로 발목을 붙잡곤 했다. 김 감독 같은 백전노장도 "서울의 야구장을 가득 메운 홈 팬들 앞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대표 선수들의 심정도 똑같다. 두산 소속 국가대표인 장원준, 양의지, 허경민을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서울에서 경기하는 만큼 최선을 다해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1라운드 통과가 1차 과제"라는 말에는 '다음 단계로 진출하겠다'는 목표 외에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물론 대회가 홈에서 열리는 덕분에 얻는 이점도 있다. 대표팀은 오키나와 훈련을 마치고 23일 귀국한 뒤 곧바로 대회 장소인 고척스카이돔에서 훈련을 시작한다. 가까운 일본에서 1라운드를 치르는 쿠바와 호주를 불러들여 평가전도 치른다. 대회 직전에는 경찰 야구단과 상무를 실전 파트너로 맞아들인다. 다음 달 6일 열리는 이스라엘과의 첫 경기 전까지 충분히 적응 훈련을 마칠 수 있다. 세인트루이스 오승환과 시애틀에서 뛰다 복귀한 이대호, 지바롯데 출신의 이대은을 제외하면 선수 전원이 이미 고척스카이돔 그라운드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처음으로 '한 팀'을 이뤄 오키나와에 입성한 국가대표 선수들. WBC를 향한 국내 야구팬들의 관심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한국 경기가 열리는 날, 홈 팬들의 응원으로 들썩거리는 고척스카이돔이 벌써 눈앞에 그려진다. 그만큼 이번 대표 선수들은 더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대표팀에서 원투펀치 역할을 맡을 장원준은 "부담과 사명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했다.
결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김 감독은 비행기에 오르기 전 "28인 최종엔트리를 확정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고, 유독 이번 대회가 힘들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이제는 그간의 어려운 과정은 모두 잊어버리고 훈련과 경기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오키나와 나하공항에 도착해선 "열흘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 이젠 고민이 필요 없다. 실제로 부딛혀 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