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의 전지훈련이 열리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구시카와 구장에 한화 구단 직원이 방문했다.
방문 이유는 택배 배달. 그는 "김태균 선수에게 전달할 물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태균 선수의 딸이 아빠를 응원하기 위해 보낸 물건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택배 상자는 김태균의 장비 가방을 꽉 채울 만큼 컸다. 김태균(한화)에게 "딸이 무슨 선물을 보냈나"고 묻자, 그는 말없이 씩 웃었다. "알려줄 수 없지만, 소중한 것이다.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결혼을 해서 가장이 된 남자는 새 가족 구성원을 맞이하면 '아빠'라는 이름을 얻는다. 가족을 지키는 듬직한 울타리가 돼야 한다. 그러나 프로야구 선수에게 2~3월은 '이산가족'의 달이다. 2월 1일 스프링캠프가 시작되면, 3월 첫 주까지 바다 건너에서 훈련을 해야 한다. 예년보다는 캠프 시작 시점이 앞당겨졌다. 하지만 WBC 대표 선수들은 더 오랜 기간 동안 '이산가족'으로 지내야 한다. 대회 일정이 3월말에야 종료되기 때문이다. '아빠'인 선수들은 더 가족이 그립다.
이용규(한화)와 박석민(NC)은 대표팀에서 '아들 바보'로 유명하다. 이용규는 "지금까지 국제대회는 주로 해외에서 치렀지만, 이번엔 국내에서 열린다. 낯설고 부담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미소를 지었다. "아들에게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아빠를 보여주고 싶다. WBC에 나가게 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빠가 야구를 하고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박석민 아들 준현 군 이야기가 나오자 "보고 싶어 죽겠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커서 이젠 국가대표가 무엇인지 안다"며 "아빠가 국가대표팀에 뽑혔다고 하니 정말 좋아하더라.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많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박희수(SK)는 대표팀 모자 안쪽에 '소영우빈'이라는 글씨를 적어넣었다. 그는 2015년 12월 동갑내기 신소영 씨와 2년 연애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아들 우빈이를 얻었다. 4년 전 WBC 대회에선 혼자였지만, 이제는 남편 그리고 아빠가 됐다. 아직 돌이 채 지나지 않은 박희수의 아들은 아빠가 국가대표라는 걸 모른다. 박희수는 "가족 이름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며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아내와 영상통화를 한다. 훈련을 잘 마무리하고, 한국에서 안아주겠다"고 말했다.
대표팀의 '캡틴' 김재호(두산)는 가장 최근 아빠가 됐다. 지난해 9월 득남을 했는데, 이후 모든 일이 잘 풀렸다. 팀이 한국시리즈 2연패에 성공했고, 자신은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11월 WBC 대표팀에 선발된 그는 김인식 감독의 요청으로 주장 완장까지 찼다.
김재호는 "아들이 태어난 뒤 좋은 일이 줄지어 일어났다"며 "아들을 얻고 처음 나서는 국제대회라서 의미가 남다르다.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이 크고 나면 나는 이미 은퇴하지 않았을까"라며 "언젠가 아들이 크면 '아빠가 국가대표로 뛰었다'며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 사진 기자님께 좋은 사진을 많이 부탁드려야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