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에서 참신한 콘셉트의 예능프로그램이 쏟아지고, MBC·SBS가 반 년에 하나씩은 히트 예능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KBS는 눈에 띄게 주춤하고 있다. 여전히 KBS 예능국을 먹여 살리는 것은 지난 10년 넘게 방송된 KBS 2TV '1박2일'과 4년차 예능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다.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예능국은 개편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부진한 성적을 만회하기 위한 움직임은 어쩔 수 없이 성과주의로 흘러가기 마련.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걸림돌이 등장한다. KBS가 국민의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이다. 공영방송으로서의 의무와 실적 저조로 인한 불가피한 성과주의 사이에서 딜레마는 생겨난다.
위기에 빠진 KBS 예능
주말 예능을 제외하곤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때 공개 코미디계를 좌지우지했던 '개그콘서트'는 시청률 한자릿수에 화제성마저 저조하다. 국민MC 유재석을 앞세운 장수 예능 '해피투게더'도 SBS '자기야 백년손님'에 밀린 지 오래다. '살림하는 남자들'·'배틀트립' 등도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조용히 전파를 타고 있다.
명절마다 파일럿 예능을 내놓고 있지만, 유독 안전한 선택만을 반복 중이다. '걸그룹 대첩-가문의 영광'·'엄마의 소개팅'·'신드롬맨-나만 그런가?' 등이 지난 설 연휴 전파를 탔지만, 정규 편성은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KBS의 히트상품인 언니쓰의 '언니들의 슬램덩크'도 시즌 2가 되자 신통치 못한 성적표를 받았다. 시청률은 3%대까지 떨어졌고, 걸그룹 프로젝트 자체의 진정성마저 혹평받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여자 예능, 최근 야심차게 출격한 '하숙집 딸들'도 차가운 반응을 얻기는 마찬가지. '여배우가 망가지면 웃긴 것 아닌가'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만들어진듯 보이는 이 예능은 여배우가 아니라 이수근의 원맨쇼로 평가받고 있다.
수신료의 가치와 성과제일주의
위기를 감지하자 예능국 내부에서 변화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비타민'과 '콘서트 7080'이 종영 후 시즌제로 전환된다. '트릭 앤 트루'도 일단 종영 후 시즌 2를 기약했다. 문제는 KBS가 내세우는 시즌제의 정체가 모호하다는 것. '살림하는 남자들'의 경우처럼 실제로 시즌 2가 출범하기도 하지만, 일단 종영을 위해 기약없는 시즌 2를 내거는 경우도 있다.
tvN이 매 시즌 미리 방송 횟수를 정하고 체계적으로 시즌제에 돌입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 KBS가 시즌제로 전환하겠다고 장담한 프로그램들 모두 성과가 저조한 '관리 대상'이었다는 사실은 이 같은 의혹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러자 KBS 예능국의 변화가 지나친 성과주의로 쏠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등장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폐지는 최근까지도 예능국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던 사항이다. KBS 관계자는 "방송 중인 예능프로그램 중 성과를 기준으로 줄을 세우니 '유희열이 스케치북'이 최하위 그룹에 머물렀다. 이러한 과정 끝에 폐지가 논의된 바 있다"고 귀띔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아이돌 위주의 음악 예능 사이에서 홀로 살아남은 의미있는 프로그램. 14년차 '비타민'은 국내 대표 건강 정보 예능프로그램이며, '콘서트 7080'은 지상파 유일의 중년을 위한 음악 예능이다. 폐지되거나 폐지될 뻔한 프로그램들은 모두 성과는 저조하지만 콘텐트의 다양성을 위해 꼭 필요한 예능들이다.
KBS의 예능프로그램은 국민의 수신료로 만들어진다. 사기업이 만드는 CJ E&M의 프로그램과는 뿌리가 다르다. 이에 대해 한 방송관계자는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성과만을 중요시하는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KBS가 수신료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