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순간부터, 아니 잉태의 순간부터 이미 유명인인 부류가 있다. 바로 스타들의 아들·딸이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이가 부모이다보니 어릴 적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는 건 당연지사. 최근에는 해외 패션계 역시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특히 할리우드 배우·모델·가수의 2세들이 대거 런웨이나 광고·화보까지 패션계 곳곳을 접수하고 있다. 정글과도 같은 경쟁 무대에서 '누구 아들' '누구 딸'이라는 수식어만으로 이미 톡톡한 후광 효과를 얻으며 곱지 않은 시선도 생겨난다. 이른바 '패션계 금수저'들은 누구이고 더욱 더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아봤다.
데뷔 순간부터 유명해지는 신인…베컴 2세는 온 가족이 셀럽
1월 2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샤넬의 2017 봄·여름 오트 쿠튀르 컬렉션. 가장 시선이 쏠리는 피날레를 장식한 모델은 릴리 로즈 뎁(17)이었다. 그는 배우 조니 뎁과 모델 겸 배우 바네사 파라디의 딸로, 2015년 샤넬 광고로 데뷔한 순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배우 주드 로와 배우 새디 프로스트의 딸 아이리스 로(17)도 최근 버버리 화장품의 모델로 발탁되며 뉴스가 됐고, 배우 윌 스미스의 딸 윌로 스미스(17)와 아들 제이든 스미스(19)는 각각 2016 가을·겨울 샤넬 아이웨어 광고, 2016 봄·여름 루이비통 광고에 등장하며 톱모델의 탄생을 일찌감치 예고했다.
지난 2~3년 간 톱스타들의 2세가 패션계에 발들이는 일은 더이상 뉴스가 아닐 정도로 비일비재하다. 최근 뉴욕타임스 역시 ‘누구의 아이(Children of)’를 선호하는 현상이 패션계에 나타나고 있다"면서 "현재 세계적인 패션에이전트 IMG에 소속된 유명인의 자녀만 해도 25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실제 활동하는 2세들의 숫자는 대략 세어도 이보다 훨씬 많다. 배우 발 킬머와 피어스 브로스넌의 아들 딜런 브로스넌(20), 수퍼모델 신디 클로포드의 아들 프레슬리 거버(19)와 딸 카이어 거버(16), 배우 실베스터 스텔론의 딸 시스틴 스텔론(19), 배우 데미 무어와 브루스 윌리스의 딸 루머 윌리스(28) 등이 주요 패션 광고와 잡지 화보에서 얼굴을 알렸다.
아예 온 가족이 패션 피플인 경우도 있다.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과 패션 디자이너 빅토리아 베컴 집안이 대표적이다. 부모는 물론이고 세 아들인 브루클린(18)·로미오(15)·크루즈(12) 역시 차세대 패셔니스타로 이미 손꼽힌다.한때 축구선수였던 브루클린은 T매거진(뉴욕타임즈의 스타일 잡지)의 표지모델로 나서며 이름을 알렸고, 로미오는 열 살에 버버리의 최연소 광고 모델이 돼 끼를 발휘했다. 이들과 함께 막내딸 하퍼(6)까지 엄마의 패션쇼에 나타나 프론트로우를 나란히 차지하는 모습은 늘 카메라 세례를 받아 왔다. 국내의 경우 스타 2세가 패션계로 데뷔하는 경우는 아직 미미하다. 배우 황신혜의 딸 이진이(18)가 2014년 서울패션위크 가을·겨울 컬렉션에 첫 발을 들인 사례가 꼽히는 정도다.
막강 팔로어 수에 기성·청년 세대 소비자 공략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이뤄지는 법, 스타 2세의 활약은 패션계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공략하기 때문이다. 최근 모델계가 최고의 스펙으로 치는 것이 SNS상의 팔로어 수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별들의 자녀들은 이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현재 모델 섭외 0순위로 떠오르는 켄달 제너(22)와 지지 하디드(22)를 보자. 제너의 아버지인 브루스 제너는 전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 어머니 크리스 제너는 방송인이자 사업가로 막강한 자산을 자랑한다. 데뷔 전 이부(異父) 언니인 킴 카다시안이 먼저 파파라치를 통해 패리스 힐튼의 친구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고 가족까지 공개되면서 일찌감치 인지도를 얻었다. 하디드 역시 아버지는 부동산 재벌인 모하메드 하디드, 어머니는 전직 모델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욜란다 포스터다(어머니의 재혼으로 새 아버지는 억만장자 데이비드 포스터다). 둘다 이러한 든든한 배경 덕에 데뷔 당시 이미 수백만의 SNS에서 수백 만 팔로어 수로 파급력을 자랑하는 '필연적 금수저'였던 셈이다.
게다가 이들이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는 각기 다른 두 세대의 소비자층을 공략할 수 있다. 또래 모델에 눈길을 주는 밀레니얼 세대 외에도 기성 세대까지 빨아들인다는 이야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갭은 스타들의 자녀가 대거 등장해 부모들의 젊은 시절 패션을 따라 하는 광고 영상물을 제작했다. 이에 대해 갭 마케팅 본부장인 크래그 브롬머스는 "스타를 기억하는 X세대와 스타의 2세와 동시대로 커 온 Z세대를 이어주는 역할"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특히 중장년층의 경우 1세대 스타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2세대에까지 미치면서 성장 과정을 지켜 봤고, 마치 조카를 대하는듯한 친근감을 유도한다는 이야기다.
할리우드 왕족 vs 보고 배운 탁월한 능력
'할리우드 왕족'-, 타고난 배경을 과시하는 2세 모델들이 늘어나면서 패션계에서는 이처럼 비꼬는 말도 생겨 난다. 특히 미국처럼 능력을 우선시하는 국가가 혈통주의·족벌주의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특히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패션계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것을 두고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배경 좋은 모델을 발탁하고 키운 사례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는 이야기다. 패션지 보그는 2016년 1월호를 통해 "90년대부터 활동한 스텔라 테넌트나 자퀘타 휠러만 봐도 이미 사교계 인사들이 런웨이에 등장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둘은 모두 영국 귀족 가문 출신으로 국가 대표급 모델로 활동한 인물들이다.
또 미국 연예 전문 마케팅 업체 '할리우드 브랜디드' 대표 스테이지 존스는 야후와의 인터뷰에서 2세 모델만의 특별한 능력을 손꼽았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시선을 자연스럽게 처리하고 자신을 표현해야 할지를 배운다"면서 "성인의 세계에서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가장 당당한 포즈를 배울 기회를 얻는다는 것만으로도 모델로서는 최고의 강점을 지닌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생 로랑의 디자이너인 하이디 슬리먼이 피어스 브로스넌의 아들인 딜런을 말리부 비치에서 점찍었을 때 전혀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논란은 여전하지만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단언하는 건 하나다. 패션계에 발을 들이는 것과 버티는 건 별개라는 이야기다. 처음에 화제를 몰며 얼굴을 알리기는 쉬어도 거기서 독자적인 이름으로 성공하기란 녹록치 않다. 모델 에이전트 에스팀의 이경언 이사는 "이제 패션 모델은 전문적 영역이라기보다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한다"면서 "자신만의 콘텐트와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이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