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은 A조의 강자다. 한국과 함께 유력한 1위 후보로 꼽힌다. 메이저리거가 즐비한 야수진과 비교하면 마운드의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투수 13명 중 중 현역 메이저리거는 단 1명도 없다. 하지만 눈여겨볼 선수들은 있다. 그중 1명이 '골리앗 투수' 룩 판밀(33)이다.
판밀은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필승조'에 속해 있다. 오를란도 에인테마, 톰 더블록과 함께 뒷문을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 헨슬리 뮬렌 감독의 중용이 유력하다. 지난 3일 열린 상무 야구단과 시범 경기에선 9회 등판해 1이닝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구위를 점검했다. 박치왕 상무 야구단 감독은 "9회에 나온 투수(판밀)가 2m가 넘는 장신에 시속 150km 이상 공을 던져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판밀은 5일 열린 상무 야구단과 2차 시범 경기에서도 1이닝 무실점했다.
오른손 투수 판밀의 트레이드마크는 키다. 무려 216cm다. KBO 리그 2017시즌 최장신인 투수 장민익(두산)보다 9cm가 더 크다. 외국인 선수 가운데 장신으로 분류되는 앤서니 레나도(삼성·204cm)·더스틴 니퍼트(두산·203cm)보다도 10cm 이상 더 크다.
키 하나는 타고났다. 아버지가 201cm, 어머니도 185cm 장신이다. 12세 때 이미 185cm를 넘었다. 병원 검진에서 '최종적으로 198cm까지 클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15세 때 213cm가 됐다. 원래 포지션은 포수와 1루수. 17세에 투수로 진로를 바꿨다. 높은 릴리스포인트가 이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공부도 잘했다. 독일어·영어·네덜란드어를 사용했던 판밀은 불어와 스페인어로도 대화가 가능하다. 학창 시절에는 야구선수가 아니면 교사가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눈에 띄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17세 때부터 미네소타 국제 스카우팅 디렉터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고 20세에 계약하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순항을 거듭했다. 마이너리그 수업을 차근차근 밟아 나갔고 구속은 97마일(156km)까지 찍혔다. 여기에 슬라이더를 장착해 수준급 유망주로 분류됐다.
문제는 부상과 컨트롤. 2008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른팔꿈치 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다. 구위 저하를 피할 수 없었다. 2010년 8월 투수 브라이언 푸엔테스 트레이드 때 LA 에인절스로 이적했고, 이후 클리블랜드·신시내티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에서 뛰었다. 2014년엔 한 시즌 동안 일본(라쿠텐)에서 아시아야구를 경험했다. 지난해는 미네소타 산하 트리플A와 자국 리그에서 공을 던졌다. 마이너리그 통산 9이닝당 볼넷이 4개를 넘길 정도로 고질적인 제구 불안이 약점이다.
국제 대회 경험은 풍부하다. 2007 야구 월드컵에선 한국전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세이브를 기록했다. 당시 대만(3⅔이닝·무실점)·일본(1⅓이닝·1실점)과의 경기에도 모두 마운드에 오르는 등 총 4경기에 나와 2세이브, 평균자책점 0.71로 상대를 압도했다. 2013 WBC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조에 속했던 한국전엔 등판하지 않았지만 대회 4경기에 나와 4이닝 3탈삼진 무실점으로 네덜란드의 4강행을 이끌었다.
메이저리그 전문가인 송재우 MBC SPORTS+ 해설위원은 "신장이 워낙 크다. 기본적으로 빠른공을 갖췄기 때문에 커맨드만 잡는다면 숨겨진 비밀 병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선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지면서 타자를 압박하면 골치가 아파진다"면서 "하지만 컨트롤이 하루아침에 잡히는 건 아니다. 당일 컨디션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