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야구가 도입된 해는 1904년이다. 이설이 있지만 대한야구협회는 2013년 “1904년이 한국 야구 원년”이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네덜란드는 한국보다 7년 늦게 야구가 시작됐다. 1911년 J.C.G그라세라는 영어 교사가 네덜란드에 야구를 소개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프로야구 리그는 한국보다 60년 빨리 출범했다. 8개 구단 팀당 42경기 체제인 혼크발 호프트크라시(Honkbal Hoofdklasse)는 1922년 첫 시즌을 치른 뒤 올해로 96년째 시즌을 맞는다. 영어로 번역하면 이 리그의 이름은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이다.
프로야구 리그의 규모나 수준은 미국이나 한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 지역에 비해 떨어진다. 하지만 오랜 역사 속에서 내실 있게 리그가 운영돼 왔다. 지난해 우승팀인 로테르담 연고의 넵투누스는 야간 조명 시설이 갖춰진 2460석 규모의 야구 전용 구장을 보유하고 있다. 스폰서 수입도 100만 유로에 이른다.
유럽 야구 무대에서 네덜란드는 강자다. 총 37회 열린 유럽야구선수권대회에서 네덜란드는 24회나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집계하는 세계 랭킹에서도 9위에 올라 있다.
1961년 시작된 할렘베이스볼위크는 세계 야구 강국들을 네덜란드에 초청하는 대회다. 개최 지역인 할렘은 미국 뉴욕 맨해튼 북부 지역에도 같은 지명이 있다. 뉴욕은 처음 네덜란드 사람들이 '뉴암스테르담' 이름으로 건설한 도시다. 할렘이라는 이름은 뉴암스테르담 시절의 흔적이다. 야구는 뉴욕에서 시작됐고, 세계 최초의 야구팀 이름은 뉴욕 니커보커스였다. '니커보커'는 네덜란드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야구와 네덜란드 사이의 인연은 여기에서도 보인다. 이 대회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두 번째로 출전한 1978년 대회에서 한국은 김시진과 최동원의 계투로 쿠바를 6-3으로 이겼다. 국제 대회 사상 첫 쿠바전 승리였다.
네덜란드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에 4회 연속 출전했다. 4강에 오른 2013년 대회는 네덜란드 야구 사상 최대 성취로 손꼽힌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WBC 약진은 우연이 아니었다.
2006년 첫 대회서는 1승2패로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역사적인 1승이었다. 3월 10일 파나마전에서 네덜란드의 19세 선발 투수 샤이론 마티스는 투구 수 65개로 7이닝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9년 대회에선 2라운드에 진출해 한 단계 도약을 했다. 1라운드에서 우승 후보인 도미니카공화국을 두 번이나 1점 차로 꺾으며 세계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2013년엔 1라운드 첫 경기서 한국을 누르고 B조 2위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 4경기에선 일본에 두 번 졌지만, 쿠바를 두 번 이겨 4강에 진출했다. 도미니카공화국과의 4강전에선 1-4로 졌지만, 5회초까진 1-0 리드를 잡았다.
WBC에서 네덜란드가 보여 준 야구의 힘은 미국 프로야구에서 뛰는 선수들로부터 나온다. 2006년 노히트노런의 주인공 마티스나 2009년 도미니카공화국전 승리 투수 시드니 폰슨, 톰 스투이프베르겐 등은 모두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다. 네덜란드의 해외 영토인 카리브해의 아루바와 퀴라소에선 2017년 WBC 대표팀 코치인 앤드루 존스 등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자주 배출된다.
하지만 ‘해외파’가 전부가 아니다. 2013년 1라운드에서 네덜란드는 한국에 5-0 완봉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 등판한 투수 네 명 중 세 명은 자국 리그에서 뛰었다. 한국전 승리에 이어 4강 도미니카공화국전에서도 호투한 디에고마 마크웰은 2007년부터 넵투누스 유니폼을 입고 있다. 올해 WBC 대표팀에도 특히 투수진은 절대 다수가 지난해 혼크발 호프트크라시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네덜란드 본토 출신 메이저리거들도 있다. 20세기 이후로 한정하면 모두 일곱 명이다. 첫 주자인 버트 블라일레븐은 네덜란드 자이스트 출신이다. 커브의 달인이었던 블라일레븐은 메이저리그 통산 287승을 따냈다. 그도 2017년 WBC 네덜란드 대표팀 투수코치다.
가장 최근에 데뷔한 뉴욕 양키스 유격수 디디 그레고리우스는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퀴라소로 이주했다. 야구를 배운 곳도 퀴라소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요하네스는 목수로 일하며 네덜란드리그에서 투수로 뛰었다. 그가 이번 WBC까지 세 번이나 네덜란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데는 가족과 네덜란드의 '야구 전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