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만 대표팀에는 '다수파'가 있다. 대만 원주민 출신 선수다. 투수 7명, 야수 10명으로 전체의 60.7%다. 대만 인구 2300만 명 가운데 84%는 청나라 이전 이주한 내성인, 14%가 국공 내전 이후 장제스정부와 함께 대만해협을 건넌 외성인이다. 원주민은 전체 인구의 2%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WBC 대표팀에서는 절대 다수다.
대표팀의 유일한 '미국파' 투수인 쟝샤오칭(클리블랜드)은 아메이족 원주민 출신이다. 미국 진출 첫해인 2012년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을 받아 2013년까지 제대로 뛰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싱글 A에서 8승12패 평균자책점 3.96으로 호투했다. 시속 153km에 이르는 강속구와 싱커, 커브, 체인지업을 던진다. 원주민 가운데서도 아메이족은 유독 우수한 야구선수를 배출했다.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인 대만의 '국민 타자' 린즈셩도 아메이족 출신이다.
이들 외에 린천화·황셩슝·천홍원(이상 투수), 쩡다홍(포수), 린즈샹·왕셩웨이·쟝즈시엔·천용지(이상 내야수), 쟝즈하오·쟝정웨이(이상 외야수) 등이 모두 아메이족이다. 투수 천홍원은 당초 대표팀 발탁을 고사했지만 궈타이위안 감독의 설득으로 합류했다. 인구 20만 명 가량인 아메이족에서만 대표 선수가 12명 배출됐다. 여기에 형제 외야수인 가오궈후이와 뤄궈룽은 아버지가 객가인, 어머니가 아메이족이다. 두 선수를 포함하면 14명이다. 아메이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화롄현은 대만에서 야구 전통이 깊은 지역이다.
미네소타 트윈스 마이너리그에서 뛰다 현재 일본 독립리그 구단 고치 파이팅독스에서 뛰고 있는 투수 로궈화는 시디그족 출신이다. 2014년 제작된 웨이 더솅 감독의 러닝타임 4시간36분짜리 영화 <시디그발레> 는 1930년대 시디그족의 항일운동을 다루고 있다.
구원투수 왕징밍은 대만 동부 해안 지역에 거주하는 베이난족 출신이다. 과거 KBO 리그의 SK 입단을 추진했던 베테랑 투수 판웨이룬은 마카다오족이다. 대만 남부 가오슝과 핀동 평원 일대에 주로 거주하는 마카다오족에는 판 씨가 많다. 대표팀에선 제외됐지만 대만 프로야구 통이 구단의 대표 외야수인 판우슝도 마카다오족이다.
최종명단에서 제외됐지만 50인 예비엔트리에 포함된 원주민 출신 선수도 있다. 요미우리와 FA 계약을 하며 불참한 외야수 양다이강, 201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밀워키 투수 왕웨이중, 클리블랜드 마이너리그 출신 내야수 쟝위청, 피츠버그 출신 포수 쟝진더 등이 아메이족이다. 또한 클리블랜드 소속 포수 주리런은 파이완족, 보스턴 소속 유격수 린즈웨이는 부농족, 대만프로야구 푸방의 포수 팡커웨이는 저우족 출신이다. 대만 중앙산맥 고지대에 거주하는 저우족은 일본 강점기 시절 마지막까지 저항한 원주민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한 원주민 집단에서 왜 우수한 야구 선수들이 많이 배출됐을까.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원주민 사회에서 야구는 정체성의 일부"라고 지적한다. 대만에서 야구는 일제 시대 도입됐다. 국민당 정부는 야구를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라는 이유로 홀대했다. 1923년 건설된 '대만 야구의 성지' 위안샨 구장이 1951년 미국군사지원고문단 본부로 사용된 건 상징적인 일화다.
이 교수는 "대만에서 원주민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는 과거보다 향상됐지만 아직 하류층이 많다. 야구는 원주민들에게 성공을 거둔 분야다. 이 점이 긍정적인 집단 기억으로 작용해 야구에 더 집중하게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주민에 대한 유무형의 차별 때문에 야구가 원주민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출구'가 되기도 했다.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스포츠와 연예계로 많이 진출한 것과 유사하다.
대만 야구전문가인 김윤석 WBC 대표팀 전력분석원은 "대만에선 '원주민 출신 선수는 운동 능력이 뛰어나다'는 게 정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만에는 원주민 야구선수 협회가 따로 있다. 소수민족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분위기"라며 "특유의 끈끈한 단결력은 이번 WBC 대표팀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