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35·세인트루이스)은 달랐다. 논란이 있었던 국가대표 선발. 그러나 적어도 그의 공은 오승환이 대표팀에 왜 필요한지를 확실히 보여 줬다.
오승환은 국가대표 단골이다.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시작으로 2006 도하아시안게임, 2008 베이징올림픽 등에 출전했다. WBC는 1~4회 대회 모두 출장이다. 네 번째 대회 선발 과정은 험난했다.
2015년 말 터진 해외원정도박 파문 때문에 찬반 의견이 분분했다. 그는 지난해 1월 법원에서 벌금형을 받았고, KBO는 그에게 복귀 조건부로 7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메이저리그 구단 소속이라 징계를 완수할 수 없었다. 논란은 불가피했다. 여론은 대략 반반. 오승환을 뽑아도, 뽑지 않아도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승환은 입장을 밝힐 수 없었다. 지난 1월 초 미국으로 떠나기 전 "선수로서 준비는 확실히 해 놓겠다"고만 했다.
김인식(70) 대표팀 감독도 고민이 깊어졌다.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종엔트리에서 그를 제외했다. 하지만 부상 선수 발생으로 엔트리 교체가 잦아졌다. '역대 최약체 대표팀'이라는 평가도 쏟아졌다. 국가 대항전인 만큼 팀 전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오승환은 1월 11일 최종엔트리에 포함됐다.
오승환은 김 감독이 원정도박 논란에 따른 부담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을 뽑으려 했는지를 마운드에서 입증했다. 대표팀은 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이스라엘전서 1-2로 졌다. 이 패배 이후 2라운드 진출에 비상이 걸렸다. 결과에 못지않게 마이너리거가 주를 이룬 이스라엘 타선에 KBO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들은 자신감 있는 승부를 하지 못했다. 볼넷 9개를 내줬고, 이 중 2개는 실점으로 이어졌다. 김 감독은 "투수가 제구력이 잡히지 않아 볼넷을 남발하며 상대에게 기회를 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오승환은 달랐다. 등판 상황은 8회말 2사 만루. 스콧 버챔을 4구 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전광판에는 시속 149㎞, 150㎞, 148㎞, 148㎞가 찍혔다. 볼넷 남발에 지쳤던 팬들은 오승환의 시원한 돌직구에 환호했다. 스피드도 빨랐고, 특유의 살아 움직이는 무브먼트도 대단했다. 그보다 인상적인 건 직구 4개를 꽂은 자신감이었다. 오승환은 이날 한국 대표팀 투수 중 가장 자신 있게 공을 던졌다. 경기를 해설한 박찬호 JTBC 해설위원은 "상대가 치기 어려운 공이라면 다시 던져도 된다. 대표팀 투수들은 오승환의 과감한 투구를 보고 느끼는 게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승환이 던진 공 20개 중 스트라이크는 15개(75%). 오승환을 제외한 투수들의 스트라이크 비율은 54%에 불과했다.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의 무명 투수들이 오히려 더 자신감 있는 피칭을 했다.
3월 WBC는 모든 선수가 100%의 컨디션으로 참가하기 어렵다.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라 부담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먼저 지고 들어가면 상대를 이기기가 더 어렵다. 9일 대만전은 WBC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 오승환은 마운드 위에서 자신의 존재감과 함께 지금 대표팀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도 확실히 보여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