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혹은 태극마크를 언제나 쫓아다니는 단어들이 있다. 정신력, 투혼, 절실함 등이다. 특히 출전한 국제대회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수도 서울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2패로 탈락 위기에 몰린 야구 국가대표팀이 그런 상황이다.
경기 내용은 변명의 여지 없는 '졸전'이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들이 두 경기에서 딱 한 점을 냈다. 투수들도 첫 경기에서는 심각한 제구 난조를 보였다. 이스라엘의 싱글A급 타자들을 상대로도 도망가는 피칭을 했다. 여기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야구 팬은 많다.
하지만 과연 정신력과 관련된 문제였을까. KBO리그에서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무명의 마이너리거들에게 눌리는 장면은 유쾌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많은 연봉이 정신력을 나태하게 했다는 식의 접근은 비약이다. 한국 선수들은 훨씬 많은 연봉을 받는 일본, 미국을 상대로도 과거 멋진 승리를 거뒀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그때는 절실함으로 가득했고,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절실함'과는 다소 다른 의미지만 오키나와 전지훈련 때부터 대표팀을 지배했던 건 부담감이었다. 첫 국가대표에 발탁된 최형우는 평가전에서 안타를 치지 못하자 주눅이 들었다. 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국내의 한 평가전 상대 팀은 '좋은 공'을 던져주기도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인식 감독부터 부담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기대했던 메이저리거들의 대회 출전이 어려워지자 최종 엔트리 확정 전부터 대표팀엔 불안감이 가득했다.
WBC 첫 두 경기의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3월에 열리는 WBC는 컨디션 관리가 어렵다. 준비에서부터 뭔가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꽤 오래 계속된 젊은 선발 투수 기근 현상과 최근 KBO리그의 타고투저 현상이 국제대회 경쟁력을 저해했을 수도 있다. 단순히 기량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부담감도 한 이유일 것이다. 대회 직전 국내에서 치른 평가전에선 좋은 플레이가 나왔다. 하지만 실전 뚜껑을 열고 보니 선수들은 자기 플레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 점은 WBC에 참가하는 어떤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2017년 WBC에서 최대 이변을 일으킨 팀은 이스라엘이다. 역사적인 한국전 승리를 일궈낸 뒤 한 이스라엘 대표 선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컸던 경기"라고 말했다. 부담감을 이기는 건 어렵다. 역대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해결사'로 활약했던 이승엽조차 "그때는 회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대표팀 사람들의 말에서 이를 컨트롤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이스라엘 대표팀의 제리 웨인스타인 감독은 한국전 전부터 "우리는 약팀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선수들도 같은 말을 했다. 1라운드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대표팀은 최초의 여성 코치로 유명한 스티븐 시걸을 멘탈 코치로 고용했다. 웨인스타인 감독은 시걸 코치에 대해 "야구는 멘탈 관리가 중요한 스포츠다.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지도자였다. 브루클린 예선부터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에 필요한 건 '절실함'이나 '투혼'에 대한 강조보다는 한 명의 멘탈 코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