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용암이 꿈틀거리는 거대한 용광로를 보는 듯 했다. 빨간색 옷을 입은 3만1000여명의 '치우미(逑迷)'는 일사분란한 박수와 함성으로 중국 축구대표팀을 향한 응원전을 펼쳤다. 틈틈이 배치된 중국 공안과 군인, 창사가 고향인 마오쩌뚱(毛澤東)의 조각상까지 어우러지자 허룽스타디움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은 23일 중국 후난성 성도 창사에 위치한 허룽스타디움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6차전을 앞두고 있다. 이날 경기장 풍경은 예상한대로 실로 엄청났다. 중국 공안당국이 안전을 우려해 원래 정원의 약 80%인 3만1000여명을 입장시켰다고 했지만 실제로 체감되는 관중수는 그 이상이었다. 기자단에 주어진 프레스석 사이에 있는 계단이나 작은 틈새마다 종이를 깔고 앉은 중국인들이 수두룩했다.
치우미들은 이날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허룽스타디움 인근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1시간 전에 이미 착석을 완료한 응원단은 중국 대표팀이 몸을 풀기위해 그라운드로 나오자 경기장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다. 중국 대표팀은 일렬로 줄을 선 뒤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성원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반면 치우미들은 가볍게 볼을 차는 한국 대표팀을 향해서는 야유를 퍼부었다. 중국 공안 당국은 치우미에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응원을 금지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은 한국팬을 위해 250석 가량을 별도로 비워뒀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쪽의 두블럭 가량은 비워져 있었고, 경기시작 20여분을 앞두고 수 십여명의 '붉은악마'가 들어와 태극기를 펼쳤다. 한국 응원석 뒤에는 공안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붉은악마들은 거대한 태극기와 '대한민국 붉은 악마, Red Devil'이라고 적인 플래카드를 걸었으나 치우미를 압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국은 이번 6차전에 사실상 전부를 걸고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 산술적인 가능성만 남은 상태에서 마지막 희망의 불씨라도 끄고 싶지 않은 분위기다. 마르첼로 리피(69) 라는 세계적 명장까지 영입하며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
한편 중국 축구협회는 한국 기자들 옆에 1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붙였다. 약간의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이들은 기자가 화장실에 갈 때도 함께했다. 배려가 지나친 나머지 감시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