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스포츠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국민의 건전한 여가 활동을 진작하기 위하여 프로스포츠 육성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4일 시행된 스포츠산업진흥법의 핵심 내용이다. 정부와 국회는 스포츠를 ‘산업’으로 인식하고 스포츠 산업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법률을 개정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프로 구단에 공공 체육 시설을 25년까지 사용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KBO 리그에서 25년 장기 임대로 운영되는 야구장은 두 곳이다.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와 광주 KIA챔피언스필드다. 두 구장 모두 구단 모기업이 시설비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25년 운영권을 부여받았다.
2014년 개장한 챔피언스필드가 첫 사례다. 처음에는 이상적인 모델로 각광받았다. 지방자체단체는 거액이 소요되는 구장 건설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구단과 모기업은 장기 계획 아래 구장을 근거로 수익을 창출하는 기회를 얻었다. 지역 야구팬들은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최초 모델인 챔피언스필드의 25년 운영권은 지금 분쟁 중이다. 지역 시민단체는 25년 장기 임대가 ‘특혜’라는 입장이다. KIA의 모기업인 기아자동차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 가뜩이나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기업의 스포츠 투자에는 제동이 걸려 있는 상황이다. 광주광역시는 기아차의 ‘양보’만 바랄 뿐 이렇다 할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특혜' 여론을 주도하는 광주 지역 시민단체는 '참여자치21'이다. 참여자치21은 2009년부터 광주시 야구장 관련 이슈를 제기해 왔다. 시정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참여자치21이 공식적으로 챔피언스필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건 2012년이다. 2월 9일 발표한 성명에서 참여자치21은 처음으로 챔피언스필드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성명서의 제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아자동차(주) 신설 야구장 투자 사회 공헌 차원에서 이뤄져야'다. 참여자치21은 "기아차가 2010년 하반기 신설 야구장 건립에 300억을 투자하기로 한 것에 광주시민들은 환영했고 기대하는 반응을 보였다"며 "이 투자를 두고 광주시민들은 광주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KIA 타이거즈의 모기업이며, 지역민의 성원 속에 광주에서 성장한 우리 지역의 대표적 상징 기업인 기아차의 광주에 대한 기여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여기에서 챔피언스필드 운영권을 둘러싼 근본적인 대립 지점이 읽힌다. 시민단체는 기업의 야구장 투자를 '사회 공헌'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선 기업이 야구장을 운영해 수익을 얻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는 2016년 스포츠산업진흥법의 개정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광주시와 기아차가 참여하는 야구장손익평가위원회는 챔피언스필드 25년 사용수익권에 대한 가치 평가를 했다. 기아차는 182억원 적자, 광주시는 23억원 흑자로 각각 평가했다. 광주시의회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TF는 기아차가 건설비로 투자한 300억원에 30억원 플러스 알파를 사회 공헌 기금으로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광주시의 평가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기아차와 KIA 구단은 야구장에서 발생하는 수입 이상을 운영비로 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야구단 운영을 '사회 공헌'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이런 주장도 가능할 수 있다. 기아차는 지난해 매출액이 52조원인 대기업이다. 하지만 프로야구를 '산업'으로 본다면 기아차와 KIA가 수용하기 어렵다. 스포츠산업진흥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체육 시설을 연고 프로스포츠단과 우선 수의계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전에는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따라 일반 입찰로 사용·수익자를 정하도록 돼 있었다. 프로스포츠단에 공공시설을 활용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KBO 관계자는 "스포츠산업진흥법이 개정됐지만, 아직 지방자치단체에서 프로야구를 산업으로 파악하는 시각은 아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아차가 광주시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프로야구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광주시에서 선례가 만들어지면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이를 따를 것이다. 프로야구단 경영 조건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훈전 부산 경실련 사무처장은 "광주구장 문제는 결국 지역에서 KIA 타이거즈를 프로야구단이 아니라 대기업 활동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며 "프로야구단이 시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공공재적 성격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라고 말했다. 프로야구단이 연고 지역과 주민에 더 밀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광주시와 기아차는 31일 제5차 야구장손익평가위원회 회의를 개최한다. 광주광역시가 해묵은 숙제에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