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봄은 꽃으로 시작된다. 이른 봄부터 동백·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3월 중순부터는 산수유·벚꽃·진달래 등이 번갈아 가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개화에 맞춰 잇달아 축제도 열린다. 남도로 봄맞이 여행을 간다는 것은 곧 꽃을 보러 간다는 의미다.
서해안의 봄은 먹거리로부터 온다. 이른 봄부터 새조개·주꾸미·간자미·도다리 등 갯것들이 무더기로 올라온다. 축제도 먹거리 축제 일색이다. 서해안의 봄은 눈이 아니라 입으로 먼저 느낀다.
서해안의 봄을 만끽하기 위해 충남 서천으로 달려갔다. 풍부한 먹거리뿐 아니라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장항 스카이워크 등 볼거리, 즐길 거리도 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동백군락지도 서천에 있다.
주꾸미·간자미등 먹거리 풍성
이맘때면 서천의 홍원항·마량포구, 인근 보령의 무창포, 홍성의 남당항, 당진의 장고항 등 서해안 포구마다 관광버스가 줄을 잇는다. 싱싱한 봄철 먹거리를 찾는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들이다.
서해안에서 지금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주꾸미다. 주꾸미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잡힌다. 하지만 지금 잡히는 주꾸미가 가장 맛있다. 홍원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중복 사장은 "3월 말에서 4월까지 잡히는 주꾸미 살이 연하다"고 했다. 또 주꾸미 암놈은 지금부터 서서히 머리에 알이 차기 시작한다. 흔히들 '쌀밥'이라고 하는 알이 알 주머니에 가득해서 씹는 맛이 좋다.
요새 잡히는 주꾸미는 샤부샤부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조개 육수에 김·냉이·미나리·버섯을 썰어 넣고 끓인 국물에 주꾸미를 살짝 데쳐 먹는다. 봄이 입안에서 향긋하게 피어나는 듯하다. 주꾸미를 건져 먹은 후에는 주꾸미 먹물이 풀어진 국물에 칼국수를 끓여 먹는 것이 코스다.
지금 서해안 어느 포구를 가더라도 주꾸미 생물 1㎏의 가격은 4만원 안팎이다. 많은 사람이 찾다 보니 가격이 조금 올랐다. 주꾸미를 식당에 가지고 가면 세팅비를 따로 받는다. 1인당 5000~7000원. 이렇게 먹는 게 번거로울 경우 식당에서 5만~6만원을 내면 주꾸미 샤부샤부 1㎏를 먹을 수 있다.
간자미도 제철이다. 간자미 또는 간재미로 불리며 가오릿과의 한 종류다. 생김새는 홍어 새끼와 비슷하지만 홍어처럼 삭혀 먹지는 않고 무침으로 많이 먹는다. 사시사철 나지만 3월부터 6월까지가 가장 맛있다. 암놈이 수놈보다 더 졸깃하다. 2~3인분 무침 한 접시에 4만5000원 안팎이다. 새의 부리 모양처럼 생긴 새조개도 지금이 샤부샤부로 먹기 가장 좋은 때다. 식당에서 1㎏에 4만원가량 한다.
동백숲·스카이워크 등 볼거리도 풍성
마량포구 인근에는 동백나무숲이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에서는 쉽게 동백나무숲을 볼 수 있다. 여수 오동도, 거제 지심도, 고창 선운사 등이 그런 곳들이다. 충청도에서는 그 흔한 동백을 잘 볼 수 없다. 동백의 북방한계선이 바로 마량리기 때문이다. 마량리보다 위도가 높은 인천 대청도, 경북 울릉도 등지에도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지만 모두 섬이다.
마량리 동백나무숲에는 500여 년 전에 심은 8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동백나무는 키가 10m 가까이 되지만 마량리의 동백나무는 키가 2m 남짓이다. 서해의 바닷바람을 곧바로 받아서인지 높게 자라지 못했다. 그래도 1965년부터 천연기념물(제 169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마량리 동백나무숲은 지금 거의 만개했는데 이 상태가 4월 중순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동백나무숲 정상에 있는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일몰도 볼만하다.
스카이워크도 있다. 장항송림삼림욕장 안에 있다. 스카이워크라고 하면 절벽 같은 가파른 지형에 돌출해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장항 스카이워크는 특이하게도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50여 년 전에 조성한 소나무 숲 위에 만들었다.
높이 15m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길이 236m의 공중 데크가 이어진다. 앞쪽으로는 서해 바다가 쭉 펼쳐져 있고 뒤로는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밑바닥이 강화유리가 아니고 철제 발판이어서 밑을 내려다보는 재미는 덜하다.
스카이워크 인근에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있다.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곳은 전시 공간인 '씨큐리움'뿐이다. 바다(Sea)와 질문(Question), 공간(Rium)의 합성어로 '바다에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찾아가는 전시·교육 공간'이라는 의미다.
씨큐리움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7000점이 넘는 해양 생물 표본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중앙에 유리로 만든 4층 규모의 타워가 있다. 시드 뱅크(Seed Bank)인데 우리 바다에 사는 해양 생물 표본 5000여 점을 유리병 안에 넣어 쌓아 올린 것이다. 글·사진=이석희 기자
여행 정보=서울에서 서천군청까지는 약 200㎞로 차로 달리면 3시간 남짓 걸린다. 군청에서 마량포구, 장항 스카이워크, 국립해양생물자원관까지는 차로 30분이면 닿는다. 장항 스카이워크는 입장료를 내야 올라갈 수 있다. 어른 2000원. 하지만 서천군에서 사용할 수 있는 2000원짜리 서천사랑상품권을 주기 때문에 공짜나 다름없다. 동백나무숲 입장료는 어른 1000원,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어른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