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일곱 나이에 데뷔했다. "나 오늘,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라고 읊조리던 눈빛 매서운 그는 이제 많은 걸 내려 놓았다. "제가 무슨… 저 (마)돈나 언니 아니에요"라고 손사래친다. 누가 이리 귀여울 줄 알았을까.
1986년 데뷔한 김완선은 '데뷔 30주년'이란 말은 가급적 피해달라고 주문했다. 맞는 말이지만 '원로가수' 이미지로 보이고 아직은 그렇게 성숙하지 않다는게 본인 입장이다. "30주년 넘으면 콘서트가 아니라 디너쇼 해야할 거 같잖아요. 언젠간 디너쇼도 하겠지만 아직은 더 뛰고 싶어요."
1990년 이후 단독 공연 없던 김완선이 27년만에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무대(4월 15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 선다. '불타는 청춘' 외에는 특별한 게스트도 없으며 정말 팬들과 자신만의 시간이다. "예전 불렀던 노래들은 원곡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무대를 꾸미려고요. 지금 들어도 세련되고 멋스럽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실제 이번 콘서트를 앞두고 음악 작업을 하면서도 원곡이 갖고 있는 세련된 느낌은 손을 대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고 한다.
주연배우로 영화도 찍었다. 지난해 11월 자신의 얘기를 많이 녹인 예술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섰다. 해외로 출품된 제목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이며 한국 제목은 미정이나 가제로 '헤이데이'다. '봄'으로 세계적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조근현 감독과 호흡했다.
"내가 살아온 삶이 영화에 반영이 많이 됐다. 그렇다고 꼭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 출연에 대한 로망은 있었지만 엄두도 못 냈는데 제안이 들어와 너무 놀랐다. '왜 나를 캐스팅했냐'고 물으니 그냥 궁금했다고 하더라. 감독님이 내 팬도 아니다. 오히려 나를 몰라 신기하면서 서운했다."
SBS '불타는 청춘'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8회에 처음 투입돼 최근 100회까지. '절친' 강수지는 실제 김국진과 연애 중이다. 김완선도 '불타는 청춘' 초반 김광규와 러브라인이 있었으나 지금은 끊어졌다. "김광규 씨와 잘 됐으면 진작 잘 됐겠죠. 2년이 넘었는데 이런 사이인걸 보면 아니에요"라고 깔깔 웃는다.
2시간여 술잔을 기울인 결론, '한국의 마돈나'라는 수식어보다 김완선은 김완선이다.
-취중토크 공식 질문이에요.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엄청 세요. 푸하하. 술자리를 자주 하진 않지만 마시면 많이 마시는 편이에요. 웬만한 사람 취할 때까지 마셔요. 주로 맥주나 와인을 좋아하는데 와인은 한 병반은 마셔요. 소주를 못 마시다가 최근 배웠어요."
-특별히 소주를 배운 계기가 있나요. "소주는 너무 써 맥주를 조금씩 섞어 마셨어요. 지난해 영화를 찍으면서 자주 미팅을 가졌어요. 밥 먹는 자리가 많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반주를 했는데 다들 소맥을 마시는데 맛있더라고요. 어느 날부터 집에 돌아오면 맥주는 너무 배불러 소주를 두어잔 조금씩 마셨어요. 홀짝홀짝 잘 마시는 제 모습에 놀랐죠. 자주는 아니니 놀라지 마세요."
-주사가 있나요. "기분이 업(UP) 돼요. 목소리 톤이 많이 올라가요. 처음부터 소맥을 마시는건 괜찮은데 맥주를 쭉 마시다가 소주를 마시면 큰일나요. 그럼 만취하는데 옆 사람들을 안고 뽀뽀하고…. 정작 저는 기억이 안 나고요."
-27년만에 단독 콘서트를 개최해요. "지난해 데뷔 30주년을 맞이해 싱글을 잇따라 발매했어요. 그러면서 공연에 대한 꿈을 가졌죠. 사실 지난해 개최하려다가 시기가 조금씩 밀리며 4월 15일이 됐죠. 해를 넘기면서 '데뷔 30주년'이란 타이틀을 뗐어요. 너무 원로 가수처럼 보이잖아요."
-공연 레퍼토리를 듣고 싶어요. "촬영을 마친 영화 '헤이데이(가제)'에서 볼 수 없는 몇 몇 장면을 빌려와 따라하기도 해요. 아, 공연 감독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조근현 감독이에요. 27년을 기다려준 팬들과 저의 자리이다보니 게스트는 없어요. 단 '불타는 청춘' 멤버와 영화 '더티 댄싱' 장면을 해보려고요. 매일 연습을 하고 있어요."
-스태프들이 모두 친분이 있다고요.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작곡했던 손무현 씨가 음악감독을 맡았고 20년 함께 일한 장근배씨도 댄서 단장을 맡았어요.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하면 티가 나잖아요. 좋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니까 정말 재미있어요."
-음반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나요. "그럼요. 틈나는대로 곡 받으며 준비하고 있어요. 곧 나오는 신곡을 4월 15일 콘서트에서 부를 예정이에요. 지금까지 거의 해마다 곡을 발표하고 지난해에는 네 다섯 곡을 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타이거JK·용준형 등과 협업했는데 특별히 호흡 맞추고 싶은 가수 있나요. "저야 뭐 제안이 들어오면 너무 감사하니 가리지 않아요. 호흡 맞추고 싶은 가수는 셀 수 없이 너무 많은데 특히 혁오밴드와 한 번 작업해보고 싶어요. 음색이 너무 좋아요."
-영화에 출연했어요. "어릴 적부터 유일한 취미가 영화보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막연히 영화를 보다가도 '나도 출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이내 '누가 나를 영화에 출연시켜'라며 금방 꿈을 접었죠. 그냥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작은 소망이었죠. 그러다가 거짓말처럼 영화 제안이 왔어요. 당연히 카메오인줄 알았는데 주연이라서 믿지 않았어요. 몇 차례나 확인했죠."
-왜 김완선 씨를 캐스팅했다고 하던가요. "저도 그 이유를 묻고 싶어서 첫 미팅에 나갔어요. 그런데 이유는 싱거웠어요. 그냥 갑자기 김완선이 생각났고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니 활동을 하고 있어 제안했대요. 다른 여배우도 찾아봤는데 그냥 김완선이 마음에 들었대요. 단지 그 이유라는게 놀라웠죠."
-김완선 씨 팬은 아니었나봐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감독님은 그림만 그렸고 무대 위 제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대요. '뭐 이런 사람이 있지'라는 놀라움이 신선했어요. 선입견 없이 캐스팅됐으니 뒷 말은 안 나오겠죠.(웃음)"
-본인 연기에 만족했나요. "연기를 몰라요. 시트콤 출연했던 게 전부고 기본기도 없는데 잘 할 수 없죠. 감독님은 날 것을 보고 싶다고 연습해오지 말라고 했어요. '이렇게 촬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순조롭게 흘러갔고 너무 칭찬을 해줘 뿅 갔어요. 정말 힘든 거 없이 촬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몇 달간 행복한 꿈을 꾼 거 같아요. 지금까지 살아오며 듣지 못 했고 죽을 때까지 들어야할 칭찬을 그 몇 달 새 다 들었어요. 하도 칭찬하니 중간중간 일부러 속이는 건가 싶을 정도로."
-간략한 소개를 해주세요. "10대에 데뷔해 화려한 시절을 거쳐 중년이 된 한 가수의 이야기요. 그게 저에요. 영화같은 영화에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영화죠. 그래서 더 특별하고 행복해요."
-자전적 내용이네요. "그게 똑 부러지게 할 말이 없는게 감독님 본인도 '이러 이러한 영화다'고 정의를 내릴 수 없다고 했으니깐요. 감독님은 '내가 만든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것이다'고 해요. 꼭 필요한 장면이 아니라 같이 있다보면 생각나는 것들을 순간적으로 촬영하게 되고 느낌 가는 대로 찍은 장면이 많아 특별해요. 계산되지 않은 결과물이에요. 국내 제목은 미정이에요. 가제는 '헤이데이'고요. 해외 출품할 때는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로 정해졌어요."
-차기작도 정해졌나요. "놀랍게도 있어요. 감독님 작품에 카메오로 출연해요. 들어갈 역할이 없었는데 감독님이 만들어줬죠. 이건 100% 감독님의 얘기인데 저랑 촬영하니 다른 사람을 만나는게 힘들 거 같다고 했어요. 아휴 민망해라."
-연기 제안은 진작부터 많이 왔죠. "많이 온 건 맞아요. 영화든 드라마든 많았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말도 못 하는 애가 무슨 연기를 하겠어요."
>>2편에 계속
김진석 기자 superjs@joongang.co.kr 사진=박세완 기자 영상=이일용 기자 장소=삼청동 르꼬숑